[책마을] "모든 性은 아름답다…억압과 폭력이 없는 한"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 | 조너선 개손 하디 지음 |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595쪽 | 2만5000원

● 性 금기에 도전한 킨제이
휴머니스트·독재자 엇갈린 평가
'20세기 성 과학의 선구자'
성적인 해방이야말로 인간의 모습을 찾는길

1948년 미국 남성 5300명을 개별 인터뷰한 결과를 토대로 《남성의 성행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는 이로 인한 사회적 논란과 후유증에 대처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듬해 1월 그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연구를 해야 할 시간을 희생해가며 최고의 언론인인 세인트 클레어 맥클웨이씨를 접대하느라 일주일을 꼬박 보냈다"고 불평했다. 1953년 《여성의 성 행동》을 발표하자 반응은 더 격렬했다. 여성 5940명을 개별 인터뷰한 이 보고서에 실린 여성 성행위 관련 내용과 용어에 대한 대중의 항의는 날이 갈수록 더했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분명했다. 성과 관련된 용어를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였다. 당시만 해도 자위행위라는 말을 신문에 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청소년들의 섹스를 건전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만든 책을 쓴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조차 킨제이의 책이 사람들을 타락시킨다며 책의 판매금지를 요구했을 정도였다.

《킨제이와 20세기 성 연구》는 20세기 성과학 연구에서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에 비견할만큼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평가받는 킨제이의 삶과 연구과정 전반을 연대별로 세세히 살피는 책이다. 킨제이 성 연구에 대한 논란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20세기 성문화와 함께 시대상과 사회상까지 생생히 전해준다. 과학자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킨제이는 냉철한 관찰과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자였으면서 또한 사회적 편견에 부당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보호자이자 상담자를 자처한 휴머니스트였다. 그는 비논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성적 억압을 타파하려 했던 사회개혁가였고 진정한 자유주의자였다.

따라서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동성애자이자 편견에 사로잡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다는 극단적 평가에서부터 20세기 말 모더니즘 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자 성적 다양성과 개방성을 존중한 열린 좌파적 지식인이었다는 평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그를 비추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대중의 성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경악할만한 수준이었던 20세기 초중반의 상황에서 성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그 결과를 사회적으로 실천한 킨제이의 연구성과와 업적을 촘촘하게 그려낸다. 또한 '킨제이의 잠수함'으로 불렸던 그의 연구팀 면면과 수많은 지지자들은 킨제이의 연구가 한 개인의 영역에서 벗어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 산물이었음을 밝혀낸다. 그의 인간적 면모도 새롭게 드러낸다. 킨제이는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가면서도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일벌레이자 독재자였다. 하지만 모든 성적 소수자들에게 일일이 격려의 편지를 보낼 정도로 다정다감한 인물이었다. 또한 모든 종교적 위선과 성적 억압에 반대한 강인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성적인 해방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사회평화와 통합을 이룰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