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떨어진 원화환율…외환당국, 추가하락 막을지 '주목'

올들어 3.4% 하락 최고수준
수출 악재로 경제회복에 부담
성장 중시 김중수ㆍ최중경 등장
어떤 카드 꺼낼지 관심 집중
원 · 엔 환율이 1년6개월 만에 1200원 아래로 떨어지고 원 · 달러 환율이 연중 저점을 향해 치닫는 등 환율이 가파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원화 강세(환율 하락)는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물품의 가격을 떨어뜨려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수출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환율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하락할 경우 경제 회복에 '독'이 될 수 있다.

다소 높은 수준의 환율이 불가피하다는 소신을 가진 최중경 청와대 경제수석과 고용 · 성장을 중시하겠다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환율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화 절상 세계 최고 수준

지난 2일 원 · 달러 환율 종가는 1126원이었다. 지난해 말 1164원50전과 비교하면 환율 하락폭이 3.4%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달러화 대비 다른 주요 통화의 환율은 유로화의 경우 5.3% 올랐고 영국 파운드화는 4.9%,일본 엔화는 1.9% 상승했다.

이에 따라 원 · 엔 환율과 원 · 유로 환율은 올 들어 각각 5%와 10%가량 하락했다. 그만큼 원화 가치가 올랐다는 얘기다. 올 들어 호주 달러(달러 대비 절상률 3.0%)와 태국 바트화(3.1%) 가치도 오름세를 타고 있지만 원화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처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경제 회복 속도가 빠르고 재정 건전성도 양호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지난해 플러스 성장을 달성한 국가는 한국 호주 폴란드 등에 불과하다.

지난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하면서 재정 건전성이 크게 악화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플러스 성장 덕에 당초 예상 수준보다는 양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대상수지 적자폭은 당초 5%를 웃돌 것으로 관측됐으나 4%대 중반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으며,재정적자비율(GDP 대비) 역시 정부는 당초 35.6%를 예상했으나 33~34%까지 낮아진 것으로 추정됐다. 중국(19.8%)을 제외하면 일본(218.6%) 미국(84.8%) 독일(78.7%) 영국(68.7%) 등 전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양호한 수준이다.

◆속도조절 강도가 관건전문가들은 환율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센터 팀장은 "외국인들이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한국 주식 및 채권에 대한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며 "이달 중 원 · 달러 환율이 1100원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인들은 올 들어 한국 주식을 6조1000억원어치 이상 사들였고 채권의 경우 지난달 한 달에만 6조70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여기에 경상수지가 지난 1월 적자에서 2월 흑자로 돌아섰으며 3월엔 15억달러 흑자로 전망되고 있다는 점도 환율 하락을 점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 중 원 · 달러 환율이 1120원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최대 변수는 외환당국이다. 이진우 NH선물 리서치센터장은 "대세는 환율 하락으로 가고 있지만 최중경 수석 및 김중수 한은 총재의 등장으로 당국의 태도가 전투형으로 변할지 여부가 변수"라고 말했다. 환율주권론자로 불리는 최 수석은 2003~2004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재직 시절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현물 외환시장뿐 아니라 NDF(역외차액결제선물환)시장에까지 개입했다. 당시 2조원 이상 손실을 봤지만 최 수석은 국내 기업의 수출 증가 등을 감안하면 전체적으로 큰 이득을 봤다고 말해왔다. 김 총재는 외환 쪽에 대해 분명한 언급을 하진 않았지만 지나치게 빠른 절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고 강조했지만 김 총재는 고용과 성장도 함께 중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출기업의 타격은 고용 불안과 성장 둔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달러 매수 개입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일 외환당국은 막판 종가 관리에 나섰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장중 한때 1122원까지 하락하며 연중 저점이던 1119원80전 수준을 위협할 조짐을 보이자 대거 달러를 사들여 전날 대비 4원 하락하는 수준에서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시장 전반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을 미루긴 했지만 강경 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 △국제무대에서 한국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글로벌 불균형의 원인을 제공하는 국가로 분류되며 △한국이 올해 G20(주요 20개국) 의장국이란 점 때문에 외환당국의 개입 강도가 예전에 비해 강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준동/유승호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