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값 급등 '비상'] 수요 없는데 가격 뜀박질…銅파이프 · 케이블 거래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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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도매상가 가보니
케이블값 1주일새 10% 올라
자금회전 안돼 현금거래만
건설경기 침체 겹쳐 '전전긍긍'
비철 · 특수강 도매상가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다. 이달 초 서울 문래동의 스테인리스 스틸 도매업체인 연일금속이 최종 부도 처리되면서 더욱 얼어붙었다. 부도금액은 15억원 선.지난해 말부터 건설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원재료인 니켈 값이 급등해 스테인리스 스틸 가격도 크게 오르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자금 회전이 악화돼 생긴 일이다. 이처럼 전기동 니켈 등 비철금속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급등하자 도매상들은 사실상 손을 놓았다.
◆수요 줄어 가격 전가 못해국내 구리 제품의 가격은 국제시세와 연동돼 움직이는 게 통상적이다. 유일한 동제련 업체인 LS니꼬동제련에서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에 연동해 전기동 가격을 고시하고,이 가격에 제련된 동판을 팔기 때문이다. 이 동판을 가공해 전력케이블이나 동파이프 등이 도매시장에서 거래된다. 그러나 국내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현재 도매상들은 최종 수요자에게 가격을 모두 전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선의 경우 구리 비중이 70%로 원가의 60~70% 정도를 차지하는데 국제시세를 제품값에 다 반영하지 못해 타격을 입고 있다. 케이블 대리점인 대한동력케이블(서울 낙원동) 관계자는 "현재 동가격은 환율을 감안하면 사상 최고 수준"이라며 "국제 시세가 오르다보니 케이블 값도 이달 들어서만도 7~10% 또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경기가 죽으면서 시장은 얼어붙었는데 값은 올라가니 장사가 안된다"고 덧붙였다.
동판(인탈산동)의 경우 지난 1월 ㎏당 9800원에서 3월 1만2000원으로 오른 데 이어 7일 현재 1만2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동주조회사인 양양메탈(파주)의 한기성 이사는 "포클레인 지게차 등 중장비나 프레스기계를 만드는 업체가 주고객인데 건설경기가 죽으면서 작년 말에 비해 수요가 30~40%나 감소했다"며 "수요는 3년 전부터 조금씩 줄어들었는데 지난해 말부터는 직격탄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도매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최근엔 현금거래만 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음거래를 했다가 줄도산이 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러다보니 어음 거래를 할 때보다 거래량이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건설업체 부도설에 대량 거래 엄두 못내니켈 국제시세가 오르면서 니켈을 섞어 만드는 스테인리스 스틸 유통업체들도 고통을 겪고 있다. 이달 들어 포스코와 BNG스틸 등이 값을 올리면서 스테인리스 스틸 중 사용량이 가장 많은 품목 중 하나인 스테인리스 304 2㎜ 2B의 도매 가격은 한 달 새 7.6~8.4% 뛰었다. 1차 유통업체인 S사에 따르면 지난달 ㎏당 3550원이던 스테인리스 304 2㎜ 2B 도매가격은 이달 3850원으로 8.4% 상승했다. 2월 중순(3250원)에 비해선 18.5%나 오른 값이다. 시장에선 이달 중순에 한 번 더 가격이 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원가 상승률을 다 반영한다면 ㎏당 300원 올려야 맞겠지만,시장 상황을 보면 150원 정도 올리는 게 맞다"며 "4월 상승분은 150원에서 300원 사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도매값 인상이 늦춰지는 것은 2차 유통업체들의 판매가 매우 부진하기 때문이다. 서울 문래동의 한 스테인리스 유통업체 관계자는 "체감상으로 외환위기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다"며 "스테인리스 스틸의 최대 수요처는 새시,엘리베이터,배관용 파이프 등 건자재인데 건설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니 시장 수요가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시장에서 떠도는 건설업체 부도설도 유통판매 회복 속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 도매상은 "아파트 미분양 사태로 인한 중소 건설업체 부도설이 시장에 떠돈 지 한참됐다"며 "지금 상황에선 대량 구매를 원한다 해도 대금 회수 가능성이 떨어져 선뜻 응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김현석/심성미/장창민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