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출판인 고세규씨, 내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독자가 미소 지으면 내 인생 성공한 것"

베스트셀러 제조기 명성…
법정스님 책 한달새 70만부 팔려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일해
70만부.채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한 출판사가 판매한 책의 양이다. 출판사 직원들은 서점들로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하기 바빴다. 설상가상으로 국제 펄프수급 불안에 따라 종이공급마저 달려 제때 처리하지 못해 쌓여있는 주문량이 25만부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달 11일 입적한 법정 스님의 책을 최근 몇 년 동안 낸 '문학의숲' 이야기다.

문학의숲은 도서출판 고즈윈의 출판 브랜드다. 2008년 11월 《아름다운 마무리》를 시작으로 《산에는 꽃이 피네》 《일기일회(一機一會)》 《인연 이야기》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까지 6권의 법정 스님 책을 냈다. 그런데 이 6권이 모두 법정 스님 입적 이후 베스트셀러가 돼버린 것이다. 그것도 종합 순위 1~6위를 싹쓸이했으니 국내외 출판 역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 베스트셀러를 마다할 리 없지만,이쯤 되면 기분이 어떨까. 지난 14일 서울 동교동 고즈윈 사무실에서 고세규 대표(38)를 만났다. 고 대표는 김영사 주간 출신으로,김영사에서 일할 때에도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 등 숱한 양서 · 베스트셀러를 만든 편집자로 유명했다.


▼바빴겠어요.

"법정 스님이 돌아가신 뒤로는 정말 바빴죠.책 주문 전화도 많았고,저희들이 스님의 가장 최근의 책을 냈기 때문에 스님의 근황부터 절판에 관한 의견,앞으로의 계획 등을 묻는 전화까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죠."▼책도 많이 나갔죠.

"입적 후에만 스님 책이 70만부가량 나간 것 같습니다. 법정 스님 책은 그야말로 갖고 있는 양이 바로 매출이니까요. 종이 구하기가 어려워 어렵게 찍었습니다. 종이 공급이 원활했으면 더 많이 팔렸겠지만 미련은 없어요. "

▼기분은 어떻습니까. "사실 좀 애매합니다.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6위를 독차지한 출판사는 아마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게 우리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스님 입적에 따른 일시적 관심 덕분이니까요. 더욱이 애도 기간에 책이 잘 팔리는 것을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잖아요. 다만 스님께서 생전에 '나는 책을 통해 좋은 인연을 참 많이 만났다. 나에겐 책이 참 소중하다"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 스님의 책을 독자들이 많이 보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게 저희가 할 일이죠."

▼잘 팔리고 있는 책,좋은 책을 절판해야 한다고 하니 섭섭하지 않던가요.

"사실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스님께서 '남아 있는 책을 잘 부탁한다'고 하신 적도 있고,두 번째 법문집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 나왔을 땐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일을 완성해 줘서 고맙다'고도 하셨거든요. 법문집은 스님 말씀을 공식적으로 정리하는 것이라 머잖아 떠나실 것을 예견하신 것 같아요. "▼요즘 같으면 출판하는 재미가 있겠습니다.

"2004년 4월에 출판사를 차려 독립한 이후 올해보다는 내년,내년보다는 그 다음 해의 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해왔습니다. 쉽게 말해 출판 경기가 가장 좋은 때가 지금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거죠.실제로 종이책 퇴조현상이 눈에 띄게 현실화되고 있으므로 지금 재미있게 일하지 못하면 몇 년 뒤에는 더 이상 종이책을 만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좋은 날,안정적인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건 그 다음 문제고요. "

▼출판 일을 시작한 게 언제였습니까.

"대학(서강대 국문학과) 때부터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었어요. 대학 졸업 후 동양생명보험에서 1년가량 일하다 풀빛출판사에 들어가 8개월쯤 일하다 그만두고 김영사에 들어갔습니다. 김영사는 입사시험이 어려웠어요. 시험문제 풀이와 자기소개서까지 7장을 써낸 다음에 면접 두 차례,외국책 원서 읽기 · 원고에서 제목과 카피 뽑기,독후감 쓰기 등 정말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들어갔죠.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라 경쟁률이 300 대 1을 넘었거든요. "

▼출판사에서 일해보니 어떻던가요.

"김영사에선 재미있었죠.좋은 원고도 정말 많았고요. 그런데 당시만 해도 책을 만들 때 원고 단계부터 편집,교정,인쇄 등 전 과정을 맡을 사람이 없었어요. 다행히 저는 풀빛출판사에서 책의 전 과정을 배웠기 때문에 묵은 원고 중에 좋은 걸 골라서 책을 많이 냈는데,하이럼 스미스의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 《잘 먹고 잘 사는 법》 등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땐 '먹어치우듯' 일을 했어요. 한달에 7권을 낸 적도 있으니까요. "

▼출판사를 차려 독립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까.

"김영사는 참 일하기 좋은 출판사였습니다. 자유롭게 책을 만들 수 있도록 배려도 많이 해줬고요. 그래도 뜻이 100% 맞을 수는 없으니까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제가 병이 나서 안식년을 갖게 됐고,그 뒤 독립하게 됐죠.처음에는 한 출판사의 도움으로 책을 만들 공간과 자본을 마련해 시작했는데 힘들었죠."

▼독자적으로 책을 만들어보니 좋습니까.

"처음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같았습니다. 전에는 사장님의 결재를 받고 확실해보이는 것 위주로 책을 만들었지만 이젠 내고 싶은 건 다 내자고 생각했거든요. 회사를 만들기로 하고 어떤 책을 낼지 메모한 게 56건,두 달 만에 계약까지 한 게 40건이었으니 무리였죠.계약한 책들이 시차를 두고 나오는데 나중에 나오는 책은 묵은 기획이 되는 데다 초기 투입 비용에 비해 수익은 낮으니까 어려웠죠."

▼그래도 책에 대한 반응은 좋았잖아요.

"첫 책 《선비의 배반》은 조선 정치사상사에 관한 새로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출간 즉시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에 올랐고,《당신에게 좋은 일이 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넘어섰다》 《안씨가훈》 《박물지》 등으로 첫해부터 주목받았죠.덕분에 1년 반쯤 뒤에는 수익성도 좋아졌지만 이번에는 출판사가 새로운 사무실을 얻어 진짜로 독립해야 할 상황이 닥쳐서 또 힘들었어요. 그런 경험이 결과적으론 약이 됐습니다. 고비 없이 순탄하게만 왔더라면 출판을 더 만만하게 보고 큰 실수를 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

▼책 만드는 일이 재미있습니까. "내가 만든 책을 독자가 읽을 때 참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들어요. 가령 여행지에서 책을 읽을 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책에서 새로운 걸 얻고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내 일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겁니다. 독자가 미소 짓는 책을 만들면 제 인생은 성공한 것이죠."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