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바보 사랑'을 소설로 부활시켰죠"

7년만에 장편 '용서를 위하여' 출간한 한수산씨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기는 쉽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념과 처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용서와 화해,일치에서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

7년 만에 장편소설 《용서를 위하여》(해냄 펴냄)를 내놓은 한수산씨(64)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책에는 '그리운 이름,김수환 추기경'을 부제로 붙였다. 《용서를 위하여》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실제 작가와 동명인 소설가 한수산.서재에 틀어박혀 집필에 몰두하던 그가 새벽 2시에 뒤늦게 케이블 종교방송에서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그의 발자취를 거슬러 떠나며 소설은 시작된다.

1922년 천주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김 추기경이 1956년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르기 전까지가 배경이다. 김 추기경이 어떤 길을 따라 사제가 됐는지 그의 인간적 고뇌와 영적 과정을 작가 자신의 경험을 섞어 엮어냈다.

"'사랑하세요'라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우리 사회나 천주교 신자들이 너무 단순하고 감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나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개인이든 사회든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해 알고 그 구성원 사이에 충돌이 해소되는 과정,혹은 화해가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여기에 용서의 문제가 가로놓입니다. 용서를 통한 화해가 이뤄지지 않고는 사랑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이 소설은 특히 작가가 처음으로 '한수산 필화사건(筆禍事件)'을 자신의 입으로 자세히 묘사해 주목된다. 한씨는 1981년 5월 한 일간지에 연재 중이던 장편 《욕망의 거리》로 인해 동료 문인 등과 함께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 가난한 시골 우편배달부의 세 자녀가 신분 상승과 이상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던 1970년대를 그리면서 정부 비판과 고위공직자를 희화화했다는 게 이유였다. 당시 보안사령관 노태우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한씨는 일본으로 떠나 4년간 머물렀고 동료 시인 박정만씨는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했다.

고문 장면이 생생히 묘사된 '6장 기억의 늪'에 대해 그는 "비교적 담담하게 써내려갔지만 이상하게 직접 교정을 보기는 싫어 출판사에 부탁했다"고 털어놨다. 또 "실제 취조실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지는 않고 순화했다"며 "증언이 아니라 소설의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추기경은 1980년대부터 적대적인 사람을 사랑하라고 말씀해 오셨지만 저는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스러웠습니다. 가해자의 사죄 없이 그를 용서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김 추기경의 삶을 돌아보면서 아직 고문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이제는 잊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이 저의 용서입니다. "한씨는 김 추기경을 단 한 차례 스치듯 만났을 뿐 개인적인 친분은 전혀 없다.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 전집》(가톨릭출판사)에 실린 추기경의 연설이나 일화는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과 만나 생생한 장면으로 되살아났다.

추기경이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군위의 옛집,식민지 청년의 들끊는 가슴으로 고뇌했던 도쿄의 조지대학,대구의 주교좌 계산성당과 첫 사목지인 안동의 목성동성당 등 추기경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작가는 이렇게 전한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나의 죄를 용서하옵소서."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