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눈에 비친 광화사의 동심

작가 박인식씨 기획 '정기호전'
그림을 그리다 미쳐버린 화가를 광화사라 부른다. 산악인이자 소설가인 박인식씨(59)는 1980년대 초 우연히 만나 인연을 맺은 서양화가 정기호씨(71)의 이름 앞에 '광화사'라는 별칭을 붙인다. 왜 멀쩡한 화가를 미쳤다고 할까.

박씨는 단편소설 《광화사,새벽에 머리를 감다》에서 그 만남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바야흐로 천재 예술가의 예술혼에서 피어나는 후광을 목격한 나머지,(나는) 정기호씨의 천재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일에 사명을 가진 전도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 아르쿠르 전속 작가인 정씨는 종이 위에 유화를 사용하는 독특한 기법으로 '인간과 자연의 아름다운 유희'를 그려온 작가다.

30여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인연이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정기호 회고전'에서 문학적인 날줄과 미학적인 씨줄로 변주되고 있다. 정씨가 평생 작업한 그림 3000여점 중 50여점을 골라 박씨가 기획하고 전시장에 걸었다.

해학적인 요소를 가미한 작품들과 붉게 채색된 6 · 25전쟁 그림,원초적인 생명력을 그린 1970년대 '태'시리즈,동심의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든 근작까지 전시장 1,2층 전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 주제도 '정기호의 미(美)치도록'으로 붙여 작가의 감수성을 유쾌한 필치로 녹여냈다. 정씨의 작품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벌거벗은 여인'처럼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색과 선의 율동감으로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형처럼 날렵하거나 음표처럼 공중에 떠 있다.

짙은 푸른빛과 황톳빛을 배경으로 피카소의 입체파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 구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동화 속 상상의 세계를 나이테로 치환시킨 이유는 유어예(遊於藝 · 예에 노닐다)의 놀이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한 것.

프랑스 미술평론가 제라르 슈리게라는 "삼각형 및 원형으로 축소된 산과 얼굴,돌출된 식물,선회하는 꽃잎,여행하는 별과 바다 등이 화폭에서 천진난만한 놀이의 형태로 조응하며 생명력을 되살려냈다. 하늘색 배경 위에 펼쳐진 빛과 파스텔톤 채색에서는 때묻지 않은 동심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 1939년 일본에서 태어난 정씨는 9세 때부터 남원에서 성장한 뒤 1995년 파리로 건너가 회화 작업을 시작했다. 파리 국립미술협회 회원,파리 국립미술전 영구회원이기도 하다. (02)3210-0071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