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패륜·발길질녀

초등학생 200명에게 물었더니 97%가 말할 때 욕을 한다고 답했다. 72.2%는 뜻도 모른채 쓴다고 했다. 여고생 4명을 45분간 관찰했더니 248번의 욕설이 나왔다. 15가지 욕 중 'ㅈ나'는 102번이나 사용됐다. 지난해 3월 방송된 'KBS스페셜-10대,욕에 중독되다'의 내용이다.

한 달 뒤 한국교총이 전국 초 · 중 · 고 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생들 대화 절반에 욕설 · 비속어가 들어간다'는 답이 75%였다. 중학생 남녀는 99.1%와 95.2%,고등학생 남녀는 93.7%와 97.4%가 평소 욕을 하고,대학생과 대학원생은 97.5%가 그렇다는 보고도 있다. 초 · 중 · 고 대학생 모두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얘기다. 실제 지하철과 버스를 타보면 남녀 상관없이 교복 입은 학생들 입에서 '미친 ㄴ(새끼)''ㅈ나''ㅆ발''ㅆ년'등 욕과 비속어가 튀어나온다. 싸우면서 하는 말이 아닌 일상 대화다. 타이르려 들면 "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자기들끼리만 그러는 게 아니다. 나이든 사람에게도 욕이나 반말은 물론 하대하는 일이 적지 않다. 급기야 여대생이 어머니 뻘 환경미화원에게 반말과 폭언을 한 '패륜녀 사건'이 터졌다.

말만 거친 것도 아니다. 패륜녀 사태 녹취록을 보면 문제의 여학생이 아주머니에게 "맞고 싶냐"라고 위협하는 대목이 나오거니와 며칠 전엔 젊은 여성이 지하철역에서 시비 끝에 임신부의 배를 찬 발길질녀 사건까지 등장했다.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비슷한 일은 수시로 일어난다. 게다가 이런 폭언과 욕설,막된 행동은 대개 힘 없고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사람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커녕 측은지심조차 없다는 얘기다.

도대체 왜 이 지경까지 됐을까. 해석은 분분하다. 또래집단 동질감 유지를 위한 버릇이 통제되지 않아서다,영화나 TV의 영향이다,말꼬리 없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 탓이다,사이버 공간의 폭력성 때문이다 등이 그것이다. 무한경쟁이 만들어낸 이기주의 탓이란 분석도 있다.

약자나 패자는 할 말 없다,힘 없고 돈 없는 사람은 무시받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사회 풍조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인성교육 없이 공부만 잘하면 된다,이기면 된다고 다그친 결과란 얘기다. 악의가 없다 해도 욕이 입에 붙다 보면 심성과 행동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개탄하다 지나갈 게 아니라 교육의 근본을 다시 세울 일이다.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