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카르텔 과징금' 5년간 2조 물었다

각국 담합제재 수위 높여 수출비중 높은 한국 '비상'
해외진출기업 임직원 대상 공정위 '예방 교육' 나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지난달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약 28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해외 반도체 업체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D램 가격 담합을 모의했다는 혐의였다. 두 회사는 이미 4~5년 전에도 같은 사안으로 미국 법무부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국제 카르텔(담합)에 대해선 해당 제품이 팔린 국가가 개별적으로 처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며 "기업 입장에선 같은 사안을 두고 중복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이 카르텔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다. 막대한 과징금은 기본이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사례처럼 자국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경우 담합이 어디에서 발생하든 처벌하는 '역외적용'도 확대되는 추세다. 실제 미국은 최근 1~2년 새 항공화물 카르텔에 총 1조9000억원,EU는 자동차유리 카르텔에 2조3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렸다. 로우리 에반스 EU집행위 경쟁총국 부국장은 올해 초 "과징금이야말로 카르텔 단속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담합 행위에 대해선 과징금을 계속 높게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법무부는 인터폴(국제경찰기구)을 비롯한 해외 경쟁당국과의 협정을 통해 카르텔 감시망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은 2008년 자국 경쟁법의 역외적용을 시작했고 중국도 반독점법의 역외적용을 확대할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 EU 일본 중국 등의 이 같은 움직임이 국내 수출기업들에 직접적인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2005년 이후 국내 기업들이 해외 경쟁당국으로부터 받은 과징금은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은 경제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높은 만큼 카르텔 방지에 신경쓰지 않으면 경제 전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카르텔 예방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8일 중국 베이징에서 삼성 LG 등 30여개 기업 임직원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데 이어 7월에는 중국 상하이,10월에는 미국에서 현지 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공정위는 카르텔로 인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방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경쟁회사의 임직원과는 가급적 만나지 말고 가격 담합은 물론 거래조건이나 설비 거래처정보 등을 교환하는 것도 금물이라는 것이다. 김석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불가피하게 경쟁회사의 임직원과 만났다면 모임의 성격과 대화에 대한 기록을 남겨둬야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이 진정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국내외 경쟁법 준수 시스템을 철저히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