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총리의 고민…"책임지라면 책임지겠다"

세종시 본회의 부결땐 사의표명 가능성 높아
대통령 국정운영에 부담주지 않겠다는 의미

정운찬 국무총리가 거취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세종시 총리'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세종시 수정에 올인해온 정 총리로서는 폐기가 확실시되는 '세종시 수정안'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만은 없는 처지다. 당장 정치권에서는 총리 사퇴 등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 총리는 27일 서울 잠실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기자와 만나 '수정안이 부결되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책임지라면 책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그에 따른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총리는 6 · 2 지방선거에서의 여당 참패,그리고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상임위 부결 등 잇단 악재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거취에 대해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할 뿐 입을 굳게 다물어왔다. 지방선거 직후인 6월3일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나란히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정 총리는 '침묵'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 총리도 사의를 표명하고 싶었겠지만 세종시 처리 문제가 남아 있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총리의 사퇴 표명은 곧바로 '세종시 수정 포기'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 총리가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 없이 사의를 표명하면 자칫 '항명'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는 점도 정 총리의 운신 폭을 제한해온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관계자는 "정 총리는 대통령에 반기를 들거나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주는 언행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정 총리가 세종시 수정안 처리를 위한 국회 본회의가 임박한 가운데 "(수정안 부결시) 책임지겠다"고 밝힌 대목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수정안이 28~29일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청와대도 깨끗이 승복할 수밖에 없다"며 "부결시 정 총리 거취와 관련해 이 대통령과 총리 간에 모종의 교감이 이뤄졌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정 총리가 수정안 최종 부결 후 사의를 표명하더라도 이 대통령이 곧바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총리 인사는 내달 14일 한나당 전당대회에 이어 청와대 참모진 및 내각 개편 등 범여권의 인적 쇄신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