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이완'은 경제 국공합작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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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만 간 교류 제도적 뒷받침중국과 대만이 지난 29일 양자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과 지식재산권보호협정에 서명했다. 중국은 드디어 대만이 제도적으로 중국의 품에 들어왔다며 축제 분위기이다. 대만 경제계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만과의 중국 시장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한 · 중 자유무역협정(FTA)을 서두르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벌써부터 중국과 대만의 통합을 내다본 '차이완' 경계론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기업 체질강화 계기 삼아야
이번 협정 체결의 가장 큰 의미는 중 · 대만 경제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갖췄다는 데 있다. 이미 중 · 대만 간 연간 교역규모는 1000억달러를 상회하고,약 7만개(중국 추산) 대만 기업이 대륙에 진출해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의미가 더욱 강한 이번 협정으로 인해 크게 바뀔 것은 없어 보인다. 중국과 대만은 2002년 이후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자격을 갖췄지만 정작 양자 간에는 경제교류의 제도적 틀이 없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경제적 공세와 정치적 견제, 대만 천수이볜 정부의 중국에 대한 경계심 등으로 인해 둘의 관계는 늘 불투명하고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또 2009년 봄 중국 정부가 대만을 마주보는 푸젠성에 해협서안경제특구 건설계획을 발표했지만,양자가 합의한 제도적 장치 없이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려웠다. 2008년 대만에서 국민당 마잉주 정권이 들어서자 후진타오 정부는 '제3차 국공합작'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대만을 적극적으로 끌어안기 시작했으며 그 결실이 이번 협정이다.
이번 협정은 중 · 대만 관계 발전에 획기적 의미를 지니지만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대만 최대 기업 대만플라스틱의 왕위웬 최고경영자(CEO)는 30일 대만 동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석유화학 산업의 주력 수출품 대부분은 조기수확 품목에서 빠졌다. 속이 상해서 울고 싶다"고 했다. 전자산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국 광둥성 둥관지역의 한 대만투자 기업 대표는 "관세가 문제인 대만기업은 대부분 이미 중국으로 생산라인을 옮겼다"면서 "협정 타결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욱이 대만이 한국과의 경쟁에 민감한 액정디스플레이나 주요 전자부품들은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빠졌다.
이번 협정이 다분히 정치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 정황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도 관련 보도에서 이번 협정이 주로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만의 중소기업과 농업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대만의 차(茶) 산업과 내수 규모가 제한적인 자동차 부품 산업 정도라는 평가도 있다. 이들이 대만의 주력산업은 아니다. 또 아세안(ASEAN) 국가에 대해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진 중국이 대만에 대해서만 앞서서 실익을 챙겨 주기 어려운 점도 이 같은 상황 이해의 배경이다. 한국으로서는 '차이완'의 등장에 너무 경황 없어 할 필요는 없다. 높은 단계의 FTA까지 가기에는 중국과 대만은 다 같이 정치적 제약을 가지고 있고,낮은 단계의 경제통합과 생산요소 결합은 이미 이뤄졌다. 이번의 ECFA는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위안화의 국제화와 함께 중국 주변지역을 중국 주도의 경제질서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의도와 대만경제의 회복을 기대하는 마잉주 정부의 선거 전략이 맞닿아 있다.
중국과 대만의 행보에 자극받아 행여 한국이 중국과의 FTA 문제에 조급하게 접근할까 우려된다. 대만을 비롯해 홍콩 마카오와 중국의 관계는 '특수관계'일 뿐이다. 푸젠성의 해협서안경제특구와 중 · 대만 산업의 결합 양상을 면밀하게 관찰하되,우리는 갈 길을 차분히 가면 된다. 대만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 스스로의 체질 강화가 절실하다.
오승렬 한국외대 교수·중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