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버지와 데이트

박천웅 스탭스 사장 cwpark@staffs.co.kr
몇 년 전 아내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니 저녁을 먹고 들어오라고 연락해왔다. 그때 대학생인 아들이 오늘 저녁은 내가 아버지를 책임지겠다며 데이트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아들과 저녁을 먹고 청계천을 거닐었는데 집에선 거의 매일 보면서도 단 둘이 집밖에서 함께 지낸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 간에 따뜻함이 흐르는 감정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간부회의 때 했더니 회사 이벤트로 추진하면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가 나와 그해부터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에서는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연례행사로 추진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가족 단위로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어머니와는 쇼핑을 함께 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아버지와 단 둘이 데이트를 한 경험은 거의 없는 듯했다. 그래서 좀 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전화나 문자 등으로 정식 데이트 신청을 하고,공원 산책이나 영화 보기,호프집에서 한잔하기 등 반드시 집이 아닌 곳에서 데이트하는 기준을 지키도록 해 아버지와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처음 행사를 진행했을 때 매일 보는 아버지께 새삼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는 것부터 쑥스러웠던 데다 어렵게 말씀 드려도 '혹시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부터 하시면서 어머니와 사전에 상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돼서인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리는 등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둘만의 데이트 시간이 자연스러워져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다른 직원은 배드민턴을 같이 치거나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흰머리와 주름살 많아지신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게 됐고 아버지는 내가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닌 지켜 드려야 할 소중한 분이라는 생각에 가슴 뭉클해졌다는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다.

기혼자의 경우 직장생활에다 자식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어 안부전화도 제대로 못한 것이 항상 죄송스러웠는데 아버지와 데이트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자식들도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자식이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며 최고의 선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을 내서 멀리 여행을 가지는 못하더라도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통해 자식의 작은 정성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감동받을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도 직원들이 쓴 아버지와의 데이트 소감문을 읽으며 사장이 아닌 아버지의 심정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고 인간적인 애착을 느끼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