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도 '절약모드'…헬리콥터 팔고 밥값 확 줄여

왕궁 유지보수비도 삭감
화려함과 권위의 상징이던 영국 왕실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2300억달러(약 282조원)의 막대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국가와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6일 버킹엄궁의 발표에 따르면 영국 왕실은 지난해 4월부터 지난 3월까지 5780만달러(710억원)의 예산을 지출했다. 이는 전년도의 6280만달러(771억원)에서 8%가량 줄어든 규모다. 왕실 이곳저곳의 씀씀이를 줄이는 등 내핍 모드에 돌입한 결과다. 올해 84세인 엘리자베스 여왕은 전세비행기를 덜 타는 한편 그동안 타고 다니던 헬리콥터도 팔았다. 화려한 정찬이던 왕실 행사 식사메뉴를 뷔페로 바꾸고,버킹엄궁과 윈저성 유지보수비도 줄여 남은 돈을 국고에 반납했다. 매년 790만파운드를 수당으로 받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개인 지출은 2001년 이후 1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찰스 왕세자도 지난해 외국 순방 경비를 260만달러에서 100만달러로 줄였다. 반면 개인 세금은 지난해보다 12.6% 많은 530만달러(65억원)를 내는 등 성의를 보이는 모습이다.

왕실은 대신 품위 유지에 필요한 돈을 그동안 수당을 떼내 모아둔 저축에서 상당 부분 조달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지난해에만 650만파운드를 저축예금에서 꺼내 썼다. 버킹엄궁 측은 이 같은 속도로 지출하면 2012년이면 저축예금도 모두 바닥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경기침체와 공공부문 예산 삭감 방침을 감안,내년까지 왕실 지원금을 동결한 상태다. 대다수의 영국 국민들은 왕실의 노력을 고통 분담을 위한 '나름의 성의'로 받아들인다. 국가의 상징을 유지하는 데 국민 1인당 62펜스(94센트) 정도의 부담이면 결코 큰 돈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 혈세가 여전히 낭비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군주제 반대 모임인 공화정의 그레이엄 스미스는 "영국 사회 곳곳의 기초 복지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백만 파운드의 세금이 쓸데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