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창의 경영] (8) "독서는 나의 힘…책 속에 '승자의 유전자'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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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형태 대성산업가스 사장프랑스 에어리퀴드사와 대성산업이 합작해 1979년 설립한 대성산업가스는 화학 · 제철 · 전자 · 우주항공산업 등에 쓰이는 산업용 가스를 제조하는 회사다. 지난해 3월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김형태 사장(63)은 "앞으로 전사적인 독서경영을 실시하겠다"고 선포했다.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독서경영을 실시한 이후 58개 독서동아리가 결성돼 405명이 수시로 책을 읽고 토론한다.
반발하던 사원 나중엔 多讀家로
지금은 사내 독서동아리만 58개
전직원이 연간 6000권 읽는 셈
이들은 교보문고가 운영하는 독서통신교육을 통해 연간 12권의 권장도서를 읽는 한편 매달 독후감을 제출하고 독후감 발표회도 갖는다. 직원들이 쓴 독후감은 사장이 직접 읽어보고 매달 우수 독후감 및 발표자에게 상을 준다. 그동안 제출한 독후감을 모은 파일만 해도 여러 권이다. 지방 공장을 포함해 전 직원은 물론 직원 자녀와 배우자를 대상으로 독서특강도 연다. 서울 관훈동 본사에서 만난 김 사장은 "독서 열풍이 직장은 물론 가정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독서경영의 효과를 침이 마르게 예찬했다.
"독후감을 보면 진솔한 이야기와 재미난 사례들이 정말 많습니다. 책이라면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프다며 1년 내내 만화책도 한 권 읽지 않던 직원이 처음에는 반발했지만 회사에서 강제로 읽히니까 할 수 없이 집에서 책을 읽게 됐죠.매일 텔레비전만 보던 아빠가 책을 읽으니까 딸이 '아빠도 책 읽어?'라며 자기도 책을 갖고와서 읽더랍니다. 지금은 그 직원이 한 달에 서너 권을 읽는 독서가가 됐어요. "
책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직원은 아내와 말다툼만 하면 논리 부족으로 궁지에 몰렸으나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로 어휘가 풍부해지고 논리도 정연해져 더 이상 수세에 몰리지 않게 됐다. 집에서 텔레비전을 없앤 직원,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한 직원도 있다. 김 사장은 "무엇보다 좋은 것은 적게는 서너 명,많게는 8~10명까지 모여서 독서토론을 하니까 서로 소통이 되고 발표 실력이 굉장히 향상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서는 기가(起家)의 원동력'이라고 하셨어요. 집뿐만 아니라 가족,사회,국가가 일어나는 원동력이 독서예요. 책을 읽으면 승자의 유전자가 생기거든요. 비단 경영만이 아닙니다. 개인에게는 보다 좋은 품성과 지혜를 갖게 하고,온 나라가 책을 읽으면 국가경쟁력이 커집니다. 우리 회사 직원 500여명이 한 달에 한 권을 읽으면 1년에 6000여 권을 읽게 되니까 집단지성이 그만큼 커지지 않겠어요? 그런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사이에는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독서경영은 즐겁해 학습해 생긴 지식을 토대로 성과를 창출하고,창출된 성과를 함께 나눠 행복한 일터를 만드는 것,그래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는 "이 작은 나라가 발전하는 원동력이 뭐냐"는 질문에 "결코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했고,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어릴 때 동네 도서관이었다"고 했다. 김 사장은 이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생산성의 차이는 지식 격차에서 온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술직이나 생산직 종사자들이 독서를 통해 무슨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김 사장은 대성산업가스 산하 대성초저온연구소의 사례를 들었다. 이곳 연구원들은 항상 현미경만 들여다보며 연구하는 사람들이라 좁고 깊은 사고에 익숙하지만 융통성은 부족하다. 이럴 때 책은 앞에서 안 되면 옆에서,뒤에서 접근하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그가 공장 단위로 강연회를 열고 직원 가족들까지 학습대열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심지어 기사대기실에도 책장과 책을 마련해놓고 읽기를 권한다. 특히 김 사장의 운전기사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운전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도 깜짝 놀랄 때가 많을 정도라고 한다. 김 사장은 또 매달 한 차례씩 여직원들과 시낭송회를 열고,부장급 간부들과는 매달 한시 한 수씩 쓰고 외우는 걸 목표로 함께 공부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뭐든 읽고 외우는 걸 좋아했다는 김 사장은 매달 10권의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세우고 실천한다. 그 달에 읽어야 할 책을 매달 초 책상 위에 쌓아두고 주중에 한 권,주말에 1~2권 읽으면 목표를 달성한다. 책을 다 읽고 전보다 더 향상된 자신을 발견하면 더 없이 당당해 진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인생의 즐거움 중 독서의 즐거움이 최고(人生之樂中讀書最樂)"라고 강조한다. 최근에 읽은 책을 묻자 《다르게 생각하면 답이 보인다》 《How? 물고기 날다》 《모티베이터》 《구글드: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 《내려가는 연습》 등이 꼬리를 문다.
"마음도 먹지 않은 일이 이뤄지는 법은 없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8할은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저를 키운 건 분명 독서의 힘입니다. 외국 상대와 협상을 잘 하는 것은 《삼국지》 《채근담》 《명심보감》 덕분이고,《논어》 《맹자》 한두 줄에 인생이 담겨 있죠."
CEO가 되기 전에도 자신이 맡은 조직에서 독서경영을 실시했던 김 사장의 바람은 독서경영을 통해 열정이 넘치는 조직을 만들고 기업문화의 품격을 높이는 것.그는 "항구에서 몇백톤을 들어올리는 크레인도 에너지가 없으면 명함 한 장도 들어올리지 못한다"며 "독서를 통해 얻은 에너지가 열정과 희망을 되찾게 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