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최태지 국립발레단장‥"무대 밖에선 '인생'에 빠져야 사랑과 아픔을 표현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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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조기교육 너무 욕심내지 마세요…저도 열살 때 시작했어요만난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힘 있는 나라가 문화도 번성, G20 계기로 머잖아 'B20' 진입할 것
감동 받으면 언제나 박수 쳐도 돼요…커튼콜 할때 '브라보' 외치시고요'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예산을 늘려줬어요. 작품 많이 하라고.보통은 예술의전당에 연간 4편을 올렸는데 올해는 7편이나 돼요. 국립극장에서 공연하는 '왕자 호동'까지 합하면 대작만 8편이죠.'찾아가는 발레'를 포함해 총 110회 공연이니까 사흘에 한 번씩이죠.무용수들은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성장합니다. 올해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에 우리 무용수들이 주역으로 초청됐으니 발레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도 큰 성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롤랑 프티의 밤' 공연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최태지 국립발레단장(51).일본식 발음이 섞인 말로 우리 발레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표정이 무척 밝다. 아이를 둘이나 낳은 뒤에도 수많은 관객을 매료시켰던 프리마 발레리나답게 손짓과 몸짓도 스케일이 크고 우아하다. 활달한 성격에 잘 웃는 것 또한 타고난 복인 듯하다.
"러시아가 참 대단해요. 올해 볼쇼이발레단에서 우리 수석 무용수인 김지영 김주원 이동훈 김현웅을 초청했어요. 러시아 무용수들이 군무를 추고 우리 무용수들이 주역을 맡는 거죠.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세상에,발레 대국인 러시아가 우리를 그만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잖아요. 또 우리나라 무대에 올리는 '라이몬다'에는 러시아 주역들이 출연합니다. "
최 단장은 "국립발레단이 재단법인으로 바뀐 지 10년이 되는 올해는 발레단의 성장에 중요한 시점"이라며 "해외 진출의 원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11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축하공연으로 '왕자 호동'을 올리는데 우리나라 정도의 국력이라면 발레 20개국(B20)에 들어갈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을 거라 확신한다"면서 "경제력이 크고 힘 있는 나라일수록 문화도 번성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크라시쿠(클래식)는 더 그래요. G20에 들면 B20에도 들어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예술에 관심을 갖고 함께 키워가야 합니다. 국립이라고 하면 100% 국고 지원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국가로부터 받는 게 75% 정도이고,나머지는 우리가 벌어서 단원들이 먹어야 해요. 우리 새끼(단원)들이 좋은 작품 만나려면 그걸 가져와야 하는 것이고,그게 바로 제 일이죠.그래서 요새는 경영에 관심이 많아요. "
그는 "1996년 '해설이 있는 발레'와 '찾아가는 발레'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나친 대중화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역설한다. "타워호텔 야외수영장 근처의 무대였는데 튜브를 들고 내려오면서,유모차를 끌고 오면서,모두 구경하며 좋아하더라고요. 약 4000명이 모였을 거예요. 지난해 해남에 가니까 '으메 으메 좋은 거' 하며 너무들 좋아해요. 제주도 갔을 땐 팬사인회를 한다고 1시간 전부터 기다려요. 서울 관객들은 (기다리는 대신) 급히 차 타고 돌아가는데 지방에 가면 달라요. 단원들도 지방에 가는 걸 무척 좋아해요. 오히려 발레를 한 번도 안 본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도 좋잖아요. "
발레공연 도중에 박수를 쳐도 될까. "감동을 받으면 언제든 칠 수 있어요. 옆을 볼 필요도 없죠.음악회에서는 1악장 2악장은 안 된다 뭐 이런 식이지만 발레는 감동적일 때 언제나 칠 수 있죠.중간 레베랑스(무용수들이 관객한테 인사) 때는 꼭 박수치시고,마지막 커튼콜할 때 '브라보'라고 외치면 더 좋지요. 진짜 감동적이면 그냥 일어서면 됩니다. 그게 매너죠.구라파(유럽)에서는 무용수에게 고맙다는 의미에서 박수를 치잖아요. 눈치 보지 말고 선구자가 돼 박수를 치면 남들이 따라칩니다. 내 마음의 감동을 주는 (표현하는) 것이죠."최씨의 키는 165㎝,몸무게는 50㎏ 정도다. 어떻게 몸매와 건강까지 관리할까. "아이 둘을 낳고 무대에 올라도 괜찮았어요. 잘 먹고 잘 자요. 그게 비결이죠 뭐.올해부터는 거울 속에서 미워보일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운동을 따로 해요. 필라테스를 1주일에 두 번.먹는 건 안 가려요. 집에 가서 배고프면 라면도 끓여먹고 한식을 무척 좋아하지요. "
그의 딸들도 핏줄을 이어받았다. 첫째(리나 · 24)는 러시아 보리스에이프만 발레단의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세나 · 20)도 발레를 배우다가 '엄마와 언니가 너무 힘들어 보여'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다. 남편(임준호 · 변호사)은 예술적 끼를 접었던 아쉬움 때문에 아내의 발레 인생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10세 때 발레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는데 발레학원 선생님을 보고 반했죠.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었고 그 분이 제게는 멘토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레를 너무 일찍 가르쳐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발레는 일찍 시작하는 게 아니에요. 김주원 김지영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했죠.우리는 옆집 애들보다 더 일찍,더 많이 시키려 하는데 일찍 시작하면 싫증내요. 재능 있는 애들이 다른 길로 빠지는 걸 많이 봤죠.상체 힘이 없는데 다리에만 힘을 주면 휘고 미워지고….세계적인 발레학교는 10세부터 시작합니다. 절대로 늦었다고 생각 마세요. 프로페셔널 세계에선 10세가 시작점이에요. "
그는 또 "무대에서만큼은 무가 되는 순간,자기가 음악과 함께 움직이는 그 순간 때문에 좋아서 하는 게 발레"라며 "저도 결혼하면,애 낳으면 절대로 안 한다고 했다가 다시 거기(무대)에 가고 싶어 못 참았다"고 했다. "발레는 인생을 얘기하는 거죠.발레리나의 목표는 결국 예술성이고.외국에서는 예쁜 몸매와 테크닉보다 예술성을 봅니다. 우리 발레의 수준이 세계 콩쿠르에서 상받고,테크닉이 되고,몸매도 되지만 이제 더 좋은 작품을 만나 진짜 예술의 경지로 올라가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봐요. 전 이렇게 말해요. 무대에서는 발레에 미치지만 무대 밖으로 나가면 인생 속으로 들어가라.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걸 표현해라."
그는 앞으로 발레학교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창작발레도 많이 만들어야 하지만 제 생각에는 발레학교가 꼭 필요해요. 한국에서 너무 놀란 것은 사교육비가 비싸 발레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한정돼 있다는 거예요. 10세부터 18세까지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발레단보다 국립발레학교가 먼저 생기지요. 우린 거꾸로예요. 기숙사 학교에서 일반 교육도 하면서 중 · 고교 과정 거치고 컴퍼니(전문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는 그런 학교가 필요해요. 정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고민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