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한국 길목에서] R&D 체제, 팀플레이에 중점을

"과학자는 세계 수준이지만 실적은 미흡
개인·기관별 특화 이루고 협업 강화해야"
우리를 열광하게 한 월드컵이 끝났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략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축구 전략에서 그라운드 밖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축구 논리를 경기장 밖으로 끌어내 연구 · 개발(R&D)에 적용한다면 과도한 비약일까?

지난 20년간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관심과 투자에 힘입어 한국 과학자들은 세계 일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세계 수준의 R&D 경쟁력을 가졌다고 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다. 한국도 이제 세계 최고의 R&D 팀을 짤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과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왜 R&D 경쟁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가?축구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스타급 선수들로 구성한 축구팀이 있다고 하자.이 팀의 코치가 모든 선수들에게 만능이 되기를 요구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코치 밑에서 팀 내의 동료선수는 경쟁의 대상이고 따라서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결합할 전략도 기대할 수 없다.

이러한 축구 논리를 R&D에 적용해보자.한국의 연구소 및 과학자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정해진 기간에 논문도 많이 내고 신속하게 특허도 내야 하며 로열티 수입도 올려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만능 연구 · 개발 솔로이스트가 돼야 한다. 연구소마다 서로 다른 역할 분담 체제가 있으나 이러한 평가 제도가 때로는 역할 분담을 무색케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초과학 지원센터들은 과학자들에게 전문적인 기술 서비스 또는 테크놀로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주 임무다. 그러나 이런 센터들도 평가를 잘 받기 위해 본연의 임무보다 논문,특허 출원에 열중한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기초과학 연구자 혹은 대학 등 고객과 오히려 경쟁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뿐이 아니다. 결국 다른 연구기관 혹은 대학도 제각각 별도의 연구장비 혹은 테크놀로지 플랫폼을 갖추어야 하는,다시 말해서 각개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러한 비효율은 연구소 간뿐 아니라 연구소 내에도 존재한다. 연구소 자체의 특화 분야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경쟁력을 키우기보다는,생물 분야 연구소가 화학 연구에,화학 분야 연구소가 생물 분야에 뛰어들어 평가 잣대에 맞는 만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R&D에 관한 한 한국팀은 앞에서 본 가상의 축구팀과 유사하다. 스타 과학자는 있어도 성공전략을 위한 팀플레이는 없다.

R&D에서도 전략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한다. 한국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면 R&D의 성공전략은 무엇일까? 필자는 '지식이전'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혁신 전략이 한국의 여건으로 보아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외의 기초연구 성과를 산업화하는 연구에 집중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이 부문에 상당 수준의 경쟁력을 구축했고 이 부문이 중장기 경쟁력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이 제대로 추진되려면 무엇보다 평가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축구에서 공격수는 득점 수로,수비수는 공격차단 실적으로,골키퍼는 방어 실적으로 평가받듯이 과학자나 연구기관도 역할과 책임에 맞게 평가돼야 한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한국의 R&D 시스템이 치열한 내부 경쟁에서 협업과 팀플레이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개인별 · 기관별 특화가 장려돼야 한다. 이런 토대 위에서 팀플레이를 할 줄 아는 우수한 과학자가 나올 수 있고 R&D 성공전략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이래야만 대학,공공연구소,산업이 협동해 놀라운 시너지를 발생시키는 진정한 R&D 강팀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을 R&D 강국으로 변신시킬,필수불가결한 전략임을 자신한다.

울프 네바스 < 한국파스퇴르 연구소장 >

한국경제 & 우리은행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