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곁에 두고 싶은 책] 판다 엄지가 손가락 아니라고? '진화론'보다 더 진화된 과학얘기

판다의 엄지 | 스티븐 제이굴드 지음 | 세종서적
창조냐 진화냐?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새 책 《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인류와 우주 탄생을 둘러싼 종교와 과학 간 오랜 논쟁에 다시 기름을 끼얹었다. 그에 따르면 '빅뱅(우주를 창조한 대폭발)은 신이 아닌 중력의 법칙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다.

논란의 핵심은 신의 존재지만 실제 싸움은 진화론에 대한 입증과 반박으로 이어진다. 진화론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화론에 대한 지식은 극히 단편적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1859)에서 주창한 것으로 '모든 생물은 생존에 보다 적합한 쪽으로 변한다'는 게 요지란 정도다. 그러나 진화의 요인과 과정을 둘러싼 학설은 물론 진화론에서 파생된 이론과 주장 또한 부지기수다. 과학칼럼니스트로 유명한 스티븐 제이 굴드(1941~2002)가 쓴 《판다의 엄지》(세종서적,1998)는 그처럼 간단하지 않은 진화론을 누구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굴드는 미국 뉴욕 태생으로 1967년 컬럼비아대에서 고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에서 강의하는 한편 '내추럴 히스토리'지에 칼럼을 연재했다. 72년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진화란 목적을 위해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한순간 생태계의 평형이 깨지는 데 따른 것이란 단속평형설을 내놔 주목받았다.

그는 또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판다의 엄지다. 판다의 엄지는 사람의 엄지처럼 다른 손가락과 마주보게 돼 있는데 살펴보면 다섯 손가락의 엄지가 아닌 별개의 손가락이란 것이다. 원래 엄지를 바꾸는 게 불가능하자 손목뼈를 확장시켜 엄지처럼 쓰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책은 이밖에도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다. '미키마우스에게 보내는 생물학적 경의'는 갈수록 어려진 미키의 외모를 통해 미국 캐릭터산업과 미키의 질긴 생명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려준다. 악동으로 태어난 미키가 착한 시민 역할을 요구 받으면서 얼굴과 신장에 비해 눈과 머리가 큰 유아처럼 됐다는 것이다.

'인류 최고의 사기극 필트다운인'에서는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알았을 가짜 두개골 파편이 현생 인류 최고(最古)의 유물로 둔갑됐던 일이 실은 프랑스보다 더 오래된 인류 조상을 갖고 싶었던 영국인들의 과욕 때문이었음을 밝힌다. 굴드는 무엇보다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들었던 세력들을 비판한다.

'넓은 모자와 편협한 마음'에선 뇌의 무게로 인종 및 남녀의 차이를 입증하려 들었던 두뇌계측학의 터무니없음을 꼬집고, '다운증후군'에선 다운증후군 환자들이 아시아인과 거의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 오랫동안 이를 '몽고 백치'로 불렀던 일의 잘못을 물었다. 흔히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과학 지상주의에서 비롯되는 편견 내지 인간 중심주의의 폐해를 지적한 대목은 두고두고 기억할 만하다. "뇌의 크기로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려는 온갖 노력은 헛수고였다. 나는 인간의 특정집단에 생물학적인 평가를 가하려는 모든 기도에 대해 실로 터무니없는 중상모략이란 이름표를 달아주고 싶다. "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