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금융Watch] "신한사태, 한국 금융산업 10년 후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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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 모델로 불렸던 지배구조2008년 초쯤이라고 한다. 한 국책은행에서 당시 신상훈 신한은행장(현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때 라응찬 신한금융 회장이 나섰다. "신한금융을 이끌어갈 사람이니 안 된다"며 설득했다고 한다.
내분 사태로 한순간에 와르르
노조도 3인 공동책임론 가세
확인은 안 됐지만 이런 말이 나돌 정도로 라 회장과 신 사장은 찰떡궁합이었다. 하지만 깨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사외이사들 앞에서 "돈을 줬다" "받지 않았다"고 낯을 붉힐 정도로 둘 사이는 갈라졌다. 많은 금융계 인사들은 한국 금융산업이 후퇴한 사건이라며 "관계자는 다 책임져야 한다"는 진동수 금융위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월가의 황제가 되기까지…
샌디 웨일 전 씨티그룹 회장은 한때 '월가의 황제'로 불렸다. 증권사 사환으로 시작해 45년 만에 세계 최대 금융그룹이던 씨티그룹의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황제로 등극하기 위해 손에 묻힌 '피'는 상당했다. 자신의 후계자로 공공연히 얘기하던 제임스 다이몬 살로먼스미스바니 회장(현 JP모건체이스 회장)을 1998년 내쳤다. 2000년에는 공동 회장이던 존 리드마저 몰아내고 단독 회장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이던 마이클 암스트롱 AT&T 회장의 지지를 얻기 위해 사내 애널리스트를 시켜 AT&T의 투자등급을 상향 조정토록 했다. 이것이 들통나 3년 만에 CEO 자리를 내놔야 했다. 은행장이 되기 위한 권력자들의 다툼은 국내만이 아니다. 금융산업이 우리보다 훨씬 발전했다는 월가에서도 이처럼 수많은 암투가 펼쳐진다.
◆'한국 금융산업 모델'의 몰락
관치금융이 횡행했던 1990년대에도 주요 은행의 은행장은 내부 출신이 차지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였다. 당시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등 5대 시중은행이 휘청거리면서 외부 전문가가 은행을 점령했다. 이덕훈 황영기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과 김정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그들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신한은행은 내부 출신이 은행장을 계속했다. 빼어난 실적에 외풍을 막아내려는 끈적끈적한 조직력,재일교포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후계자 양성 시스템이 어우러진 결과였다. 신한금융의 지배구조는 주인 없는 한국 금융산업의 새로운 모델로까지 불렸다.
신화는 내분 사태로 깨졌다. 후계자 양성 시스템은 추악한 권력 다툼과,탄탄한 경영구조는 '황제경영'의 폐해와 같은 말임이 드러났다. "한국 금융산업은 10년가량 후퇴했다. "(양병민 금융산업노조위원장) "국제적으로도 망신당했다. "(강병호 한양대 교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망친 사건"(진동수 위원장)임은 물론이다.
◆"제도보다는 사람이 문제"대부분 금융계 인사들이 '공동책임론'을 제기한 진 위원장의 말에 공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공동책임론은 곧 공동 퇴진으로 이어지고,공동 퇴진은 낙하산 인사와 관치금융으로 연결될 것(한 신한은행 지점장)"이란 우려가 없는 게 아니다. 하지만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보완책을 마련한 뒤 주주에게 맡기겠다(권혁세 금융위 부위원장)"는 말이 훨씬 더 설득력을 얻는다.
신한 사태의 최대 궁금증은 사외이사 등에게 설명하는 절차를 생략한 채 신 사장을 고소할 정도의 시급한 상황이 과연 무엇이었느냐다. 이에 대해 이백순 신한은행장은 "검찰 수사가 임박해 어쩔수 없었다"고 해명한다. 사실이야 어쨌든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은 바지저고리로 전락했다. 남대우 전 SK에너지 사외이사는 "국내 사외이사 제도는 굉장히 선진적"이라며 "이를 무시한 경영진과 무시당하고도 경영진 눈치만 보는 관련자들이 제도를 망쳤다"고 말했다. 결국은 제도보다는 사람이 문제라는 얘기다.
신한은행 노조는 16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최고경영자 3명이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공멸을 의미한다"며 "사태가 수습되면 관련 당사자 모두는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용단을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