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막걸리 예찬

대한민국의 1인당 알코올 섭취량이 세계 3위라는 기사를 보고,우리 민족의 주류 사랑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무척이나 더웠던 지난 여름에 얼음이 동동 뜬 시원한 맥주와 노릇노릇 구워진 치킨으로 저녁 끼니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열풍처럼 다가온 것이 바로 '막걸리'다. 웬만한 번화가에는 전과 막걸리를 파는 전통주점이 즐비하게 늘어서고,많은 기업들이 막걸리 분야에 뛰어들어 제품을 내놓았다. 덕분에 대형마트는 물론 동네 슈퍼만 나가봐도 각종 막걸리가 자리를 널찍하게 차지하고 있다.

나는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막걸리 열풍'만은 휩쓸려 볼 만한 트렌드라 생각한다. 생물학적인 관점과 감성적인 관점에서 막걸리는 충분한 매력을 자랑한다. 막걸리는 민족의 주식인 쌀을 주원료로 효모균에 의한 발효 과정을 거쳐 술로 만들어진다. 맥주,와인,사케 등도 발효 후 증류 과정 없이 제품으로 만들어지지만,비단 막걸리만이 발효 미생물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매력적이다. 미생물 발효를 통해 인간에게 필요한 제품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막걸리도 생명공학분야의 하나라 할 수 있겠다. 막걸리에는 라이신 메티오인과 같은 필수 아미노산과 각종 비타민뿐만 아니라 장 건강에 필수적인 유산균이 다량 함유돼 있어 따로 요구르트를 섭취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술 중에서 영양학적,건강기능학적으로 가장 우수한 술이 막걸리라고 생각한다.

시골집의 쇠 주전자와 막사발을 연상시키는 막걸리의 소탈한 매력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러한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농주'라 불리며 농사일에 벗이 되어주던 그 시절부터,최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21세기 홍대,강남,압구정의 주점까지 막걸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사랑받고 있다. 또한 특유의 친화력과 조화력으로 건설 현장 인부들의 피로회복제로 활약하기도 하고,대통령이 주최하는 국내외 귀빈의 만찬 대접에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시대,장소,계층을 뛰어넘은 초월적인 '국민주'인 것이다.

신문을 뒤적이다가 우리사회 소통의 부재라는 문구를 보면서 나는 정치,경제,경영,교육 분야의 이해관계자들이 막걸리를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시원한 막걸리를 사발에 따라 한모금 마신다면,꾸밈없는 첫 맛,구수한 끝맛,소탈한 향의 매력에 취해 서로 마음을 가볍게 하고 열린 자세로 소통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과 내일을 위해 과음은 피해야겠지만,오늘 저녁 누군가와 막걸리의 매력을 느끼며 소통을 시도해보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나도 다음 번 직원들과의 회식에서는 막걸리 한사발을 함께 나누며 더 편안한 소통을 해봐야겠다.

정현호 < 메디톡스 대표 jhh@medytox.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