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성장률 2% 포인트 UP] 명품 私學 150개 만들면 조기 유학생 1만5000명 U턴 효과

한국판 이튼 칼리지 만들자

美, 학비 4000만원 사립학교 250개…매년 전세계 유학생 몰려들어
印, 특화된 기숙학교 70곳 성업…한국 유학생 갈수록 늘어

미국 보스턴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뉴햄프셔 주(州)의 시골 마을 '엑시터'.미국 최고 수준의 보딩스쿨(기숙사형 사립고등학교)인 필립스 아카데미가 있는 곳이다. 9~12학년(한국 나이 16~19세) 학생 1000여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의 연간 등록금은 3만5000달러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유학생들이 몰려들고 있다. 필립스 아카데미의 학생 대 교사 비율은 5 대 1에 불과하다. 한 반의 인원도 10명 안팎이다. 192만㎡(58만평)에 달하는 캠퍼스에는 천문대 박물관 갤러리 극장 테니스코트 등 각종 시설이 마련돼 있다. 현재 미국 사립학교협회에는 필립스 아카데미와 같은 기숙학교가 250여개나 등록돼 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미국 사립학교로 유학을 보낸 변호사 최모씨(40)는 "한 해 아이를 위해 쓰는 돈이 학비 4000만원과 생활비 등을 합해 모두 1억원가량으로 부담스럽지만 쓰는 돈 이상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싸도 좋은 학교에 보낸다"

미국 아이비리그(하버드 예일 등 미국 동북부에 있는 8개 명문대) 진학률 및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점수 기준 상위 100대 사립학교의 연간 등록금은 4만~5만달러에 이르지만 해외 유학생들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이 중에서도 한국 학생의 비중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조기 유학생 수는 2000년 4397명에서 2008년 2만7349명으로 6배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생 수는 2008년 한 해 1만2531명으로 2000년(705명)의 18배에 이른다. 같은 기간 중학생(1799명→8888명)과 고등학생(1893명→5930명) 유학도 크게 늘었다. 한국은행 국제수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학 · 연수 대외지급액은 사상 처음으로 5조원을 넘었다. 이는 국내 사교육 시장 규모의 25% 수준이다. ◆동남아 · 인도로도 유학 붐

조기 유학 지역도 과거 선호되던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인도 중국 등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조기 유학생(초 · 중 · 고)의 국가별 한국 학생 수 1위는 여전히 미국(8189명)이지만 동남아(5840명) 캐나다(4001명) 중국(3214명) 등으로의 유학도 많다. 최효찬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연구원(자녀경영연구소 대표)은 "인도에서만 이미 70여곳의 기숙학교가 특화된 교육으로 성업 중이며 한국 유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수 한국교원대 교수는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세계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교육부문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57개 참가국 중 36위로 몇 년째 중하위권"이라며 "돈을 더 내고라도 좋은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수요가 있는데 이를 받쳐 줄 공급이 거의 없어 세계 곳곳으로 조기 유학을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명품 학교 만들어 유학생 잡아야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국내에도 '한국형 이튼 칼리지'와 같은 명품 학교를 여럿 만들어 조기 유학 수요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자율형 사립고인 민족사관고 등은 유학생 수요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다고 교육계는 평가하고 있다.

이명희 공주대 교육학과 교수는 "넓은 캠퍼스,최고 수준의 교육시설을 갖춰 지 · 덕 · 체를 두루 기를 수 있는 명품 학교가 많이 생긴다면 굳이 조기 유학을 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명품 사립 초 · 중 · 고 150개를 만들면 해마다 해외로 나가는 초 · 중 · 고 유학생 3만여명의 절반가량인 1만5000명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민족사관고 등의 사례에 비춰 연간 2000만원가량의 등록금을 받는 학교 150곳이 생긴다고 할 경우,이로 인한 연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도 약 1조6000억원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생과 가족이 해외에서 사용하는 돈이 줄어 생기는 서비스 수지 개선 효과(약 1조원)와 이들이 쓰게 되는 학비(3000억원),교사 채용으로 인한 신규 고용창출 효과(3750억원) 등을 합한 수치다.

◆학교 자율성 확보 필수

해외 명문 사립학교들이 현재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학교들이 스스로 학생 선발,교육과정 수립,교원 채용,등록금 책정 등을 모두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최 연구원은 "주요 사립학교들은 대부분 설립 이념과 취지에 따라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진 교육을 하고 있다"며 "각종 규제에 묶여 있는 국내 초 · 중 · 고교들은 이들을 따라잡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율형 사립고만 해도 선발과정에서 지필고사를 금지하고,내신 상위 50% 학생 중 추첨으로 선발해야 하며,정원의 20%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뽑아야 하는 등의 제약이 많다"며 "'국가 돈을 받지 않을 자율만 있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대학입시가 자유화되지 않아 고교 내신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명문 사립학교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가 학교를 통제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문제"라며 "현 정부 들어 교육 정책에서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단위학교 책임경영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각 학교의 교장이 철학을 가지고 학교를 경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