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조선 최악의 王은 연산군이 아니라 선조였다"

조선과 明·淸 역사 교차읽기
현재 국제정세와 연관 해석 '눈길'

조선국왕 vs 중국황제 | 신동준 지음 | 역사의 아침 | 536쪽 | 2만원

"청조가 광서제와 서태후의 죽음으로 인해 3년 뒤 패망한 것은 조선조가 일제의 강압으로 고종의 퇴위 선언이 있은 지 3년 만에 패망한 것과 유사하다. 시기도 1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청조 말기에 재위한 동치제와 광서제의 재위 기간이 고종의 재위 기간과 거의 일치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

《조선국왕 vs 중국황제》는 이처럼 조선과 중국 역사의 이른바 '교차읽기'다. 한 국가 위주의 역사 읽기는 그동안 수없이 되풀이돼 온 터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를 좀 더 거시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양국의 최고 통치자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역사의 행간에 더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게 분명하다. 이 책이 소중한 까닭은 또 있다. 양국을 보는 관점을 현재시제로 돌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미 《CEO의 삼국지》에서 12명의 영웅을 통해 21세기 비즈니스 전략을 제시했던 고전 경영이론의 대가다. 이번엔 조선과 중국 명 · 청조 역대 군왕들의 통치 스타일과 리더십에 잣대를 들이대고 분석에 나섰다. 동양 3국을 통틀어 최초의 시도라 높이 살 만하다.

저자는 이들이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어떤 통치술을 발휘해 성패가 판가름 났는지 성적표를 낱낱이 공개한다. 또한 난세를 돌파하는 이들의 리더십을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해 후대의 평가에 맡긴다. 점수를 매기는 독자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교 대상은 조선 태조-명 홍무제를 시작으로 태종-영락제,세조-선덕제,선조-만력제,광해군-청 태조,인조-청 태종,효종-순치제,숙종-강희제,영조-건륭제,고종-광서제 등 10쌍이다.

영조와 정조의 경우를 보자. 둘의 재위기간을 더하면 건륭제의 재위기간과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 청조에서 건륭제가 출현해 강건성세의 대미를 장식했다면 조선에서는 영조와 정조가 실학시대의 전성기를 이뤘다. 청조가 건륭제 사후에 쇠락의 길로 들어선 것과 정조 사후에 세도정치로 조선이 몰락한 것도 비슷하다. 조선 전기와 명나라 시기 최악의 군주는 연산군과 정덕제가 아니라 선조와 만력제라는 저자의 지적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선조는 조선을 왜란의 참화 속으로 밀어 넣어 암군이 되었으며,만력제는 소모적인 당쟁 속에서 무려 25년간 조정에 단 한번도 나가지 않는 등 정사를 내팽개쳐 명조 패망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선과 중국 군주들의 부침은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이 많다. 저자는 "고금을 막론하고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역시 부국강병뿐"이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부국은 반드시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어야만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인다.

저자가 두 나라 군주를 비교한 의도도 바로 이것이다. G2로 부상한 중국은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 · 개방 30년을 지나면서 정부도 공산당도 언론도 변했다. 그런데도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는 달라진 중국을 대할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있다"는 환구시보 총편집장 후시진의 말은 이젠 제대로 대접해 달라는 '위협투구'에 다름 아니다. 중국 중원에 200~300년 간격으로 새로운 왕조가 들어설 때마다 예외 없이 거대한 '쓰나미'가 한반도에 밀려 왔던 전례가 있다. 이를 뒷짐지고 바라볼 수 있는 배짱이 없다면 마땅히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