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군소 한 접시

남해안 청정지역에서 주로 잡힌다는 군소라는 해산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 중에도 먹어보기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가 적지 않다. 군소의 오묘한 맛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는 사람만이 찾아 먹게 된 건,아마도 이 놈의 생긴 모양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삼 비슷하게 생긴 것이,껍질 부분은 시커멓고 속살 부분은 옅은 갈색이다.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간장에 조려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는데,씹으면 표고버섯 느낌의 육질에서 달착지근하면서도 약간 쓴맛이 오묘하게 우러나온다.

어린 시절 즐겨 먹었으나 서울 생활이 오래되다 보니 먹으려야 먹을 수 없었던 이 군소와 30여년 만에 마주쳤다. 5년 전 부산에서 근무할 당시 알게 된 젊은 도예가 한 분의 집에서 처음으로 가진 식사 자리에서였다. 집주인 부부의 뛰어난 음식솜씨 소문을 들었지만,솔직히 음식보다는 그릇에 관심이 더 많이 가는 자리였다. 집주인이 장작가마에서 손수 작품으로 구운 도자기 그릇 위에 음식을 담으면 얼마나 폼 나고 맛이 살아날까 궁금해 하면서 식사 자리가 무척 기다려졌다. 다실에서 차를 마시고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장 앞바다와 가까워 마침 운 좋게도 물 좋은 광어를 살 수 있었노라고 신이 나 떠들며 회를 뜰 준비를 마치고,기다리는 동안 먹으라며 에피타이저로 내놓은 것이 바로 군소 한 접시였다. 눈이 번쩍 뜨이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 씹는 순간,조금 과장하자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혓바닥만이 아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며,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고인이 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친척들끼리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나눠먹던 정겨움 같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게 아닌가. 그것은 한순간에 수십년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는 충격이었다. 누가 무엇으로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 군소 한 접시를 준비하며 초대한 손님이 즐겨 먹던 것 중에 오랫동안 먹어보지 못한 게 뭘까 고민고민한 끝에 찾아낸 것이라는 집주인의 설명을 듣고 보니,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날 이후 어쩌다 고향에 가게 되면 친척보다 먼저 부산 근교에 있는 그 도예가의 집을 찾게 된다.

누구나 경험했듯이,음식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끈끈하게 만드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그래서 예부터 명절이나 잔칫날에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기쁨을 함께하고,손님을 제대로 대접하고 싶을 때 집으로 초대해 정성껏 음식을 차려 같이 먹으려는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문화권역이 다른 외국 사람을 가까이 끌어들일 수 있는 매개로 음식을 활용하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요즈음 우리의 음식을 좀 더 알려야겠다고 정부가 발벗고 나선 '한식의 세계화'에서도 어떤 음식을 알릴 것이냐에 머물 것이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