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소셜 네트워크

할리우드의 배짱은 알아줄 만하다. 2001년엔 젊은 컴퓨터 천재들의 아이디어를 훔쳐 제것인 양 내놓는 컴퓨터 제왕을 고발하는 내용의 '패스워드'로 빌 게이츠의 이면을 꼬집는 듯하더니 이번엔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페이스북 개발자 마크 주커버그의 치부를 드러냈다.
우리 같으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다 뭐다 시끄러울 것 같은데 미국에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여기는 건지 별 일 없다. '소셜 네트워크'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하버드대생 마크의 페이스북 창업 과정과 이후 동료인 왈도 세브린 및 윈클보스 형제와의 소송이 그것이다.

영화는 마크와 애인 에리카의 결별 장면으로 시작된다. 데이트 중 자기 관심사에 대해서만 떠들 뿐 상대의 말엔 귀 기울이지 않는 것도 모자라 상대의 학벌을 무시하기까지 하는 마크에게 에리카가 이별을 고하는 것.놀란 마크는 술에 취해 블러그에 에리카를 욕하는 글을 남긴다. 뿐만 아니라 여대생들의 외모 비교 사이트를 열었다 징계받지만 능력을 알아본 윈클보스 형제로부터 학내 데이트 사이트를 만들자는 제안을 받는다. 순간 아이디어를 얻은 마크는 친구 왈도와 함께 '페이스북'을 오픈하고 여기에 냅스터 창시자 중 한 명인 숀 파커가 참여하면서 페이스북은 세계적인 SNS 사이트로 뜬다.

그러나 윈클보스 형제는 아이디어 절도죄로 고소하고,왈도 또한 6억달러짜리 소송을 제기한다. 영화는 괴짜 천재의 내면,하버드대생들의 치열한 경쟁,클럽 입회를 둘러싼 갈등,상대를 곤경에 빠트리는 교묘한 뒷공작은 물론 연줄보다 중요한 의지와 열정 실천력 등 인생을 결정짓는 요소들을 드러내 보여준다.

마크를 혼내 달라며 찾아온 윈클보스 형제에게 학교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며 사소한 일에 부모의 힘을 동원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총장을 통해 미국의 경쟁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일러준다. 페이스북은 5억명의 회원을 자랑하고 각종 소셜네트워크의 힘 또한 뭐가 뭔지 모르는 아날로그 세대를 압박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수시로 얼굴을 마주치면서도 인사하지 않고 따라서 모르는 사이인 채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 "안녕하세요" 한마디면 가까워질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치면서 인터넷 네트워크 확장에만 힘을 기울이는 게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건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너무 고루한 건가.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