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강 신호…내년 통화정책 고민 커질 것"

● 이성태 前 한은총재, 신한금융투자 특별 강연

물가도 하향 안정 예상…큰폭 금리인상 어려울 것
美 양적완화 성공 장담 못해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현 한국은행 고문)는 "경기 사이클이 하강 신호를 보내는 데다 물가가 최고치를 지난 것으로 보이는 만큼 내년 통화정책 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질 것"이라고 23일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정책당국자들은 기준금리 방향과 수준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완화 정책의 정상화 차원에서 한국은행이 내년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해야 하겠지만 경기 둔화와 물가 하향 안정 때문에 큰 폭의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으로 풀이된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신한금융투자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주최한 '2011 리서치 포럼'에서 특별강연을 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총재는 "경기 사이클이 항상 상승할 수만은 없다"며 "성장률도 올해 6% 수준에서 내년 4%대가 될 것이란 게 대체적인 전망"이라며 '둔화'쪽에 무게를 뒀다.

소비자물가에 대해선 "최근 4.1%의 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일회성 요인도 있고 해서 금년 중 최고치를 지났거나 지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 전 총재는 특히 "핵심 물가(근원 인플레이션율)가 2%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기가 하강 신호를 보내고 물가가 현재 수준에서 하향 안정되는 국면이라면 통화당국자들의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통화당국은 기준금리의 방향뿐만 아니라 수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며 "내년에 경기가 내려가고 물가상승률이 4.1%까지 갔다가 하향 안정된다면 당국자들의 선택이 뭘까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총재는 미국의 2차 양적완화(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푸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밀어내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본원통화 정책으로 금융을 움직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파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느려 바로 효과를 내기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 전 총재는 환율전쟁에 대해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이 전면전으로 가지는 않겠지만 작은 마찰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국제통화 질서에 대해 "미국 달러의 힘이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달러를 대체할 수 있는 통화가 당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감독 기능과 관련,"요즘에는 중앙은행이 본원통화를 조절하는 것으로 금융이 움직이지 않는다"며 "통화정책이 금융 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줄었고 최근에는 금융감독이 금융 흐름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감독 체계를 어떻게 가져갈지는 국가 지배구조와 연결돼 있으며 중앙은행 독립성과도 관련이 있어 답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이날 '위기 이후 경제 금융 환경'이라는 특별강연에서 "가계부채가 만성적으로 한국경제를 누르고 있다"며 "당장 폭발하진 않는다 해도 결코 가볍다고 생각해선 안된다"고 경고했다.

박준동/조진형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