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상권 지각 변동] (4) 비싼 임대료·노점상과 갈등…마니아들도 점차 발길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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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사동서 삼청동으로…문화특구 교체인사동은 여러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첫번째는 임대료 급등이다.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건물주와 상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인센티브제를 마련하고는 있지만,치솟는 임대료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사동의 딜레마
필방을 운영하는 K씨는 "월세를 별안간 두 배로 올려달라고 하니 고미술 가게들이 사라지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현재 영업하는 가게도 단골이 아까워 근근이 버티는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전통상품 가게는 사라지고 화장품 옷 액세서리 가게가 판을 쳐 다른 상권과의 차별성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둘째는 중국산 범람이다. 중국산이 넘쳐나면 인사동의 정체성은 사라지고,정체성이 없다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하다. 상인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이유다. 한지공예점을 운영하는 P씨는 "인사동에 중국산이 넘쳐나는 이유는 단가 때문인데 국산은 팔아봐야 남는 게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 임대료가 치솟아 웬만한 전통상품 가게는 생존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셋째는 노점상 문제다. 2대째 앤티크 소품 가게를 운영하는 K씨는 "2000년부터 지방자치단체에서 50억원을 들여 인사동 거리 정비사업을 벌이고 차량 통행을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혜택이 노점상들에게 돌아가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며 "가게 주인들이 판매대를 밖에 내놓게 되는 것도 노점상에 맞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말했다.
고문서를 판매하는 L씨는 "3대에 걸쳐 77년째 가업을 잇고 있는데 1990년대 말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뒤 노점상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화랑 필방 고문서 가게 손님들은 차가 필수적인데 노점상들이 차 들어오는 것을 반대해 인사동을 지켜온 전통상점들이 피해를 입는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넷째는 노숙자들이다. 전통찻집을 하는 고성숙씨(56)는 "술을 먹고 행인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거나 난동을 피우고 노상방뇨까지 하기 때문에 이를 본 외국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고 전했다. 한 전통가게 상인은 "구청에 신고하면 경찰에 알아보라고 하고 경찰에 신고하면 구청에 문의하라는 둥 떠넘기기 일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섯째는 유명 화장품 브랜드다.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등 대기업이 만든 유명 화장품 브랜드가 인사동에 자리잡으면서 이곳만의 전통적인 색깔이 빛을 바래고 있다. 고문서점을 운영하는 L사장은 "화장품 가게 때문에 임대료가 껑충 뛰었다"며 "건물주들의 눈높이를 올리는 데 화장품 가게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탄했다.
인사동이 딜레마에 빠지면서 마니아들도 점차 발길을 끊고 있다. 회사원 박성일씨(28)는 "외국인 친구에게 아기용 자수를 선물하려고 들렀다가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돌아가는 중"이라며 "한국의 전통이 깃든 디자인은 볼 수 없고 백화점에서도 살 수 있는 평범한 물건뿐이어서 실망했다"고 말했다. 도예일을 하는 이현숙씨(56)도 "직업이 도자기 만드는 일이어서 인사동의 갤러리를 자주 찾는데 고미술품 파는 집들은 모두 밀려나고 그 자리에 중국산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전통거리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안타까워했다.
◆특별취재팀=강창동 유통전문기자(팀장), 안상미/강유현/심성미 생활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