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현장속으로] "버려진 헌옷이 보물" 20國에 1200만弗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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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의류 수출 '기석무역'
'아나바다'서 아이디어 얻어 창업
3개 공장서 130여종으로 분류 … 필리핀ㆍ몽골ㆍ아프리카서 불티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의 기석무역(대표 구성자 · 48).이 회사 공장으로 트럭들이 쉴새 없이 드나든다. 헌옷이 가득 실려있다. 전국에서 분리수거된 옷들이다. 이 옷들은 3층 건물 높이로 적재된 뒤 집게차에 의해 컨베이어에 실려 작업장으로 이송된다. 수십명의 직원들에 의해 종류별로 분류된다. 블라우스 바지 치마 외투 내의 청바지 등 130여종으로 나뉘어진 뒤 수출지역별로 상자에 담긴다. 박스에 포장된 옷들은 컨테이어에 실려 세계 20여개국으로 수출된다. 연간 수출 금액은 무려 1200만달러에 달한다.
이 회사는 국내의 대표적인 중고의류 수출업체 중 하나다. 공장이 인근에 3개나 있다. 구성자 사장은 "이들 옷은 떨어져서 버린 게 아니라 싫증이 나거나 사이즈가 안 맞아서 버린 것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수거된 옷들 가운데 재활용할 수 없는 것은 20%에 불과하고 대부분 멀쩡한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옷은 캄보디아 필리핀 몽골 등 아시아와 탄자니아 앙골라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로 수출된다. 기자가 현장을 방문한 지난 14일에도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날라온 바이어 무하마드 안와르 바티 세일즈 매니저가 중고의류 수입 상담을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구 사장이 이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다. 그는 재활용 운동인 '아나바다 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열심히 중고품을 모으던 중 '잘하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에 직원 서너명으로 창업했다. 처음엔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분리수거된 옷들에 대해 제값을 주고 제날짜에 정확히 결제해주자 중고의류 수거업체로부터 신용을 얻었다. 바이어들에게도 종류별로 정확히 분류해 선적했다.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못 입을 옷은 넣지 않았다. 이를 통해 바이어들로부터도 신뢰를 얻었다. 점차 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옷들이 몰리기 시작했고 바이어들도 이곳을 찾았다.
국내 중고의류 유통업체 관계자들도 찾아와 옷을 사가기 시작했다. 명품브랜드의 내의 브래지어 청바지 블라우스 등을 벌당 1000~3000원 안팎에 살 수 있는데다 가죽점퍼 오리털점퍼 등도 1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어 불티나게 팔렸다. 이들은 산처럼 쌓인 옷들 위로 올라가 의류를 고른다. 하지만 본업은 역시 수출이다. 구 사장은 "중고의류 수출은 옷의 재활용,외화 획득,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가지 이점이 있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약 140명을 고용하고 있다.
구 사장은 "3년 전부터 중국의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도 중고의류 수출사업이 시작됐다"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한국의 중고의류와 치열한 시장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아직까지는 이들 국가에서 한국의 중고의류를 선호하고 있지만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가 이어지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걱정했다.
구 사장은 "이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하려면 중고의류를 종류별로 정확히 선별하고 저질품을 끼워넣지 않아야 하며 납기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