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교수의 경제학 멘토링] 美 양적 완화와 동아시아의 긴축정책
입력
수정
새 천년의 첫 10년은 세계 경제질서를 재편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막을 내리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소위 BRICs의 신생 거대 경제 용트림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세계 경제를 이끌어 오던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각각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소위 '양적 완화 (quantitative easing)'와 '구제금융'의 몸살을 앓는 중이다.
'양적 완화'는 이자율이 이미 0%에 이르러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데도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통화 공급을 늘리는 조치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미국은 이미 1조7000억달러의 제1차 양적 완화를 시행했는데 이제 다시 내년 상반기까지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6000억달러의 제2차 양적 완화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 은행들이 보유 중인 장기 국채를 팔고 현금을 가지게 되면 대출이 늘어 총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 정책이다. 미국은 실업률 두 자릿수에 이른 고용위기 타개를 '양적 완화'의 공식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심 다른 효과도 기대할 것이다.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예견한 달러 자금이 한국의 원화,중국 위안화,또는 일본 엔화를 대량 구입하면 물가 불안 없이 무역 상대국의 화폐 가치를 올려버릴 수 있다. 혹시 정책 효과가 지나쳐 인플레이션에 이른다 하더라도 집값이 오르면 주택담보채권이 부실채권에서 우량채권으로 둔갑해 금융권이 부담을 덜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리를 현 수준으로 동결했지만 조만간 인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그동안 경제위기를 관리하면서 풀어놓은 돈을 생각하면 금리인상의 긴축정책을 펼 때가 된 것도 같다. 그런데 미국의 '양적 완화'가 문제다. 미국 내 금리가 몇 년째 0%대이므로 늘어난 달러 자금이 국내의 고금리를 노려 대거 유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달러캐리 자금'이 환전 과정을 거치면 그만큼의 원화가 시중에 풀리므로 긴축정책의 효과는 상쇄되고 만다.
이 와중에 중국의 인민은행이 먼저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중국 경제는 아직 자본자유화가 미진한 만큼 '달러캐리 자금' 유입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역과 투자 부문에서 상당 부분 개방이 이뤄진 만큼 어느 정도의 유입은 불가피하므로 중국의 긴축정책이 과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두고볼 일이다. 이제는 통화정책까지도 국제 공조 없이는 어렵게 돼 가고 있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양적 완화'는 이자율이 이미 0%에 이르러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데도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통화 공급을 늘리는 조치다.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미국은 이미 1조7000억달러의 제1차 양적 완화를 시행했는데 이제 다시 내년 상반기까지 장기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6000억달러의 제2차 양적 완화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 은행들이 보유 중인 장기 국채를 팔고 현금을 가지게 되면 대출이 늘어 총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 정책이다. 미국은 실업률 두 자릿수에 이른 고용위기 타개를 '양적 완화'의 공식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심 다른 효과도 기대할 것이다. 달러화 가치의 하락을 예견한 달러 자금이 한국의 원화,중국 위안화,또는 일본 엔화를 대량 구입하면 물가 불안 없이 무역 상대국의 화폐 가치를 올려버릴 수 있다. 혹시 정책 효과가 지나쳐 인플레이션에 이른다 하더라도 집값이 오르면 주택담보채권이 부실채권에서 우량채권으로 둔갑해 금융권이 부담을 덜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금리를 현 수준으로 동결했지만 조만간 인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은행이 그동안 경제위기를 관리하면서 풀어놓은 돈을 생각하면 금리인상의 긴축정책을 펼 때가 된 것도 같다. 그런데 미국의 '양적 완화'가 문제다. 미국 내 금리가 몇 년째 0%대이므로 늘어난 달러 자금이 국내의 고금리를 노려 대거 유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달러캐리 자금'이 환전 과정을 거치면 그만큼의 원화가 시중에 풀리므로 긴축정책의 효과는 상쇄되고 만다.
이 와중에 중국의 인민은행이 먼저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기 위해 예금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중국 경제는 아직 자본자유화가 미진한 만큼 '달러캐리 자금' 유입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역과 투자 부문에서 상당 부분 개방이 이뤄진 만큼 어느 정도의 유입은 불가피하므로 중국의 긴축정책이 과연 얼마나 효력을 발휘할지 두고볼 일이다. 이제는 통화정책까지도 국제 공조 없이는 어렵게 돼 가고 있다.
이승훈 <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