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녹슬어 가는 검찰 배지

"검찰 배지라는 게 있어요?"

최근 만난 한 검사는 "검찰 배지가 수사과정에서 잘 활용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놀란 눈을 하며 되물었다. 타 기관 근무에서 복귀한 지 수개월이 지났는데도 그는 아직도 배지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이 검사는 "배지를 받아가라는 통보도 없었고,선 · 후배 검사가 배지를 사용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검찰 배지는 김준규 총장이 취임한 뒤인 2009년 11월 도입됐다. 검찰이 미국처럼 수사와 관련한 공무수행에서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 배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검사나 수사관이 체포나 압수수색을 할 때 영장을 제시해야 할 뿐,신분 확인에 대한 규정은 없다. 배지 제시로 신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국민 신뢰도 얻고 검사도 책임 있는 자세를 갖게 될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었다. 김 총장은 "배지는 변화한 검찰의 상징이자 수사하는 사람의 자존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총장의 야심찬 취지가 무색하게도 검찰 배지는 도입 1년이 지난 현재 '장롱 배지'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실제 업무에 사용되지 않아 대부분 집 서랍 등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지난해 4월 현직 검사가 집에 보관한 배지를 도둑맞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검사는 "자녀들 장난감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미국에서 배지는 원래 보안관들의 방탄용 목적이 컸다"며 "검찰 신분증을 놔두고 굳이 수사에서 배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국 검찰의 공식 영문 명칭은 'Prosecutors'Office'인데 배지에는 'Prosecution Service'로 표기돼 용어 혼란 논란도 있었다.

검찰이 2009년 12월 홍일표 의원(한나라당)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배지 1개당 제작비는 2만원이며 4539개가 제작돼 총 9078만원이 소요됐다. 예산은 '수사 지원 및 역량 강화' 항목에서 사용됐다. 진정 배지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를 검찰 구성원들에게 설득시키고 사용을 독려해야 한다. 9078만원은 작은 돈일 수 있다. 하지만 납세자의 소중한 돈이라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야 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다. 예산낭비는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임도원 사회부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