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재 LG생명과학 대표 "다국적 제약社 제휴 확대…실적 개선에 집중"

LGU+ 거쳐 제약분야 첫 도전
R&D 강화·재무적 성과 낼 것
"연구 · 개발(R&D)역량을 업그레이드시키는 한편 재무적 성과까지 내야하는 게 제게 맡겨진 숙제입니다. "

정일재 LG생명과학 신임 대표(사진)는 19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30년간 제약경험을 쌓은 회사의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낼지 고민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쪽에 대해 아는 게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바이오 · 제약은 사실 그에겐 전혀 새로운 도전 분야다. 그는 LG그룹 경영관리팀과 브랜드관리팀장(부사장),LG경제연구원,LG유플러스 등을 거쳤을 뿐 제약분야 이력은 전무하다.

정 대표는 "취임 후 보름 동안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팀장급의 업무보고도 두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라고 한다. 모르는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꼬치꼬치 캐물어 보기 때문이다.

그는 "밖에서는 몰랐는데 찬찬히 들여다보니 LG생명과학은 참 괜찮은 회사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0년의 경험과 함께 글로벌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생산과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춘 점을 그 근거로 꼽았다. 취임 후 좋은 일도 생겼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네덜란드의 한 연구소가 개발한 소아마비 백신의 전 세계 2개 생산회사 중 한 곳으로 LG생명과학을 선정해서다. 하지만 새 최고경영자(CEO)로서 헤쳐나가야 할 현안도 산처럼 쌓여 있다.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국산 1호 신약(팩티브)을 개발했지만,판매부진으로 절반의 성공에 그쳤고 이후 신약 R&D 성과가 주춤한 상태다. 지난 3분기까지 매출은 2613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영업이익(198억원)은 같은 기간에 비해 절반가까이 줄어드는 등 성장을 멈춘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뿐만 아니다. 삼성이 바이오산업 진출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을 푸는'미묘한 시기에 CEO가 됐다는 것도 부담이다. '비즈니스 전략가'로 통하는 정 대표가 바이오 · 제약 분야로 자리를 옮긴 것도 삼성의 바이오 진출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그는 "삼성의 참여로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선의의 경쟁을 하다 보면 전체 산업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정보기술(IT) 등 일반 제조와 달리 제약은 산업의 호흡이 무척 길고,R&D와 공장시설 등 모든 프로세스가 인 · 허가 대상이어서 산업 자체가 진입장벽"이라며 향후 삼성과 벌이게 될 경쟁에 대해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LG생명과학의 글로벌화를 서두르기로 했다. 이를 위해 기존 R&D 단계에서의 제한적 협력방식을 탈피,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 주요국 로컬 제약사들과 전략적 제휴관계를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정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씨를 뿌려야 수확할 수 있지만,나는 씨뿌리는 게 전문인 사람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향후 회사의 실적개선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비쳐졌다.

글=손성태/사진=김병언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