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상품권, 서울 재래시장에선 '찬밥'

서울 자체발행 상품권에 밀려 시장 200여곳서 유통 안돼
상인 "지방만 이득" 통합 반대…선물용 구입한 기업들 '곤혹'
직장인 A씨는 설을 앞두고 부모님에게 드릴 한약재를 사러 서울 제기동 약령시장을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직장에서 설 선물용으로 나눠준 '온누리상품권'을 내밀었지만 약재상이 결제를 거부한 것이다. "약령시장에선 온누리상품권이 통하지 않는다"는 핀잔만 들었다. 인근의 다른 시장을 찾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전국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온누리상품권이 유독 서울에서만 맥을 못추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상인연합회가 발행하는 서울 전통시장상품권에 밀린 탓이다. 재래시장 상품권을 둘러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영역다툼으로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는 양상이다. 25일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 등에 따르면 서울 시내 재래시장 300여곳 중 온누리상품권이 통하는 곳은 104곳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온누리상품권은 전통시장 1550곳 중 915곳에서 유통돼 유통률이 3분의 2를 넘고 있지만 서울에선 3분의 1에 그치고 있는 셈이다.

서울에서 온누리상품권의 보급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서울시와 '전통시장상품권' 가맹계약을 맺고 있는 각 시장의 상인회 등이 새 상품권 도입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7월 온누리상품권이 처음 발행된 이후 각 지자체가 발행하는 전통시장상품권과 대부분 통합됐지만 서울은 통합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서울상인연합회가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상인연합회 관계자는 "서울에서는 온누리상품권보다 전통시장상품권의 인지도가 더 높은 만큼 굳이 통합할 필요가 없다"며 "전통시장상품권은 우리은행 창구에 가면 바로 환전이 가능하지만 기업은행과 지방은행들이 함께 판매 · 관리하는 온누리상품권은 시스템상 이튿날 환전하는 불편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온누리상품권으로 통합될 경우 지방시장만 이득을 볼 것"이라는 심리가 작용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통시장상품권을 선물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서울지역 시장에서 쓰게 된다"며 "하지만 온누리상품권은 서울 소재 기업이 명절 선물 등으로 직원들에게 나눠주더라도 상당 물량이 지방시장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온누리상품권 유통이 부진하다 보니 기업들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온누리상품권은 작년 말까지 858억원어치가 팔려 나갔으며 이 중 기업들이 65%를 사들였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 온누리상품권

전통시장의 수요 진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발행됐다. 5000원권과 1만원권 두 종류이며,전통시장과 상점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