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Trend - Best Practice] '가죽 名家' 토즈 그룹, 신발 한 켤레 만드는데 장인 100명 '손길'

다이애나도 매료시켜
'전통,역사,장인,독창성,고품질.' 명품을 가늠하는 기준들이다. 가방 하나,신발 한켤레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지만 애호가들은 제품과 라벨 속에 담긴 스토리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최근 만난 디에고 델라 발레 토즈그룹 회장(58 · 사진)은 "명품 시장은 경기가 좋아도 잘 되고,나빠도 잘 되는 특수산업"이라고 강조했다. 경기가 부진하면 소비자들이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제공하는 명품을 선호하고,경기가 좋으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명품을 구입한다는 것.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는 시대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토즈그룹은 1908년 필리포 델라 발레가 이탈리아 소도시인 카세테 데테에서 연 제화점에서 출발,그의 아들인 노리노 델라 발레와 손자인 디에고 델라 발레(현 회장)를 거치면서 글로벌 명품 업체로 자리잡았다. 지금은 신발 가방 지갑 등 최고급 가죽제품을 만드는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경쟁력 원천'장인정신'과 가죽 소재

밀라노에서 남동부 방향으로 500㎞쯤 떨어진 르 마르쉐.손재주가 뛰어난 인재들이 많아 고급 공예품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했던 이곳에 토즈 본사와 신발공장이 있다. 토즈 신발제품은 모두 이 공장에서 생산된다. 이탈리아 안에서 100% 생산되는 진정한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 브랜드다. 2000년대 초반 경기 침체 속에서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인건비가 싼 아시아 지역으로 생산공장을 옮겨 비용을 절감했지만,토즈는 '메이드 인 이탈리아'를 고수해 브랜드 핵심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델라 발레 회장은 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작은 신발공장을 1998년 1만6000㎡ 규모로 리뉴얼해 최신식 설비를 갖췄다. 겉모습과 제작 환경은 현대적이지만,100여명의 장인 손길을 거치는 전통적인 신발 제조기술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제화공장"이라며 "토즈 구두는 50여종의 가죽을 100단계가 넘는 제조공정을 통해 노련한 장인들의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쳐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재 선별부터 까다롭다. 40년 이상 경력을 지닌 가죽 마스터가 철저히 검열한 최상급 가죽을 재료로 쓴다. 델라 발레 회장은 "토즈의 가죽 저장고는 1년 내내 60%의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 조각이 수천만원에 이르는 희귀 악어가죽부터 도마뱀,양,염소 등 500여종의 최상급 가죽들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절차를 거친 가죽들을 35개 조각으로 재단해 장인들이 하나하나 꿰매고 손질한 끝에 토즈 신발이 탄생한다. ◆고품질과 헤리티지에 집중

토즈의 브랜드 철학은 대를 이어 지닐 수 있는 유행을 초월한 제품을 만든다는 것.델라 발레 회장은 "토즈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브랜드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가죽 스페셜리스트'"라며 "프랑스의 에르메스처럼 고품질과 헤리티지(유산)에 집중해 브랜드 가치를 키워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점이 트렌드에 민감한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들과 차별화되는 대표적인 경쟁력 요소라는 지적이다.

완벽한 품질,창의성,장인정신 등 토즈의 가치를 대표하는 제품은 '고미노 슈즈'(1950년 출시)와 '디(D)백'(1997년 출시)이다. 고미노 슈즈는 발에 장갑을 낀 듯 편안한 착용감과 130개의 고무밑창을 달아 실용성을 강조한 가죽신발이다. 이탈리아 국민 3명 가운데 1명이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디백은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영국 토즈 매장에서 여러 개를 한꺼번에 사갔다는 사실이 알려져 세계 시장에 '토즈'라는 브랜드를 각인시킨 품목이다. 이들 두 제품은 시대와 유행에 상관없이 토즈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델라 발레 회장은 "브랜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글로벌 명품 소비자들에게 차별화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전달하는 것이 토즈의 목표"라고 말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델라 발레 회장은 1975년 작은 기업을 물려받아 '토즈'라는 브랜드를 달고 글로벌 명품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는 "토즈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대에 이어져온 장인정신을 충실히 지키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만큼 생산 규모를 균형있게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토즈그룹은 제품을 만드는 방식과 기업철학은 전통을 고집하고 있지만,기업 경영에는 현대적인 방식을 도입했다. 10년 전엔 밀라노 증권거래소에도 상장했다. 델라 발레 회장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가족기업이지만 기업공개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입지를 다졌다"고 설명했다.

2003년에는 재무 담당인 스테파노 신치니 사장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매 시즌 전 세계에 내놓는 토즈 제품에 대해서는 델라 발레 회장이 일일이 챙기고 있지만,재무와 해외 사업에 관한 한 전문경영인인 신치니 회장에게 모두 맡기고 있다.

토즈그룹의 이 같은 균형있는 경영기법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가운데 일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들이 매물로 나오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다. 지난해 토즈그룹의 매출은 7억8750만유로로,전년보다 10.4%가량 증가했다. 이 가운데 그룹 핵심 브랜드인 토즈는 16.7% 증가한 4억700만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그룹 전체로도 한국 홍콩 등 아시아 지역에서 31% 성장했으며,유럽과 미국에서도 각각 8.6%와 15% 신장하는 등 전 세계 시장에서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밀라노(이탈리아)=안상미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