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공학·패션 융합…'하이브리드 아트' 뜬다

IT·미디어 환경 변화 반영
올 들어 전시회 줄이어
홍콩 파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씨(42).그의 '9 · 11-치유'는 서양에서 일어난 테러를 동양 회화로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옷에 영상화한 설치작품이다. 세필로 그린 회화보다 더 생생하고 영상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Media Art HD'라는 앱을 내려받으면 아이패드로 감상할 수 있다.

동양과 서양,아날로그와 디지털,과거와 현재,개인과 집단,로컬리즘과 글로벌리즘의 통합을 응축한 이 작품은 21세기 융합형 미술 트렌드인 '하이브리드 아트'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미술과 인문 · 사회과학을 융합한 '하이브리드 아트'가 뜨고 있다. 이는 건축과 생활과학,심리학,대중문화,첨단 기술,패션,영화 요소 등을 반영해 현대인의 욕망과 정서를 회화 · 조각 · 영상 · 설치미술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장 크리스토와 김도명 김주연(생태학),루시앙 프로이트와 트레이시 에민,성유진 김정욱(심리학),이불 홍승혜 김주현 김병주 이문호 한성필 이해민 고기웅 김병주(건축 · 수학),이이남(정보기술),최우람 정승(기술과학),김기철(음악),줄리앙 슈나벨과 매튜 바니(영화),제임스 터렐(물리학) 등이 대표적이다.

하이브리드 아트가 주목받는 것은 첨단 정보기술과 미디어 환경변화를 다양한 인문 · 자연과학적 요소와 접목해 부가가치 높은 창작물로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과 인문 · 사회과학의 이종 교배

미국의 제임스 터렐은 미술에 물리학을 적용해 국제 미술계에서 유명세를 탄 설치작가다. 그는 빛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물리학을 전공한 끝에 '빛의 예술가'로 불리게 됐다. 영국의 여성작가 트레이시 에민은 현대인의 상처를 미술로 승화시켜 주목받았고,국내 작가 성유진 김정욱 이샛별 씨는 현대인의 트라우마를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기하학적 원리를 화면에 차용해 온 홍승혜 씨는 캔버스와 붓 대신 컴퓨터를 사용해 사각형 등 이미지를 만든 뒤 가구,벽화,조각 작업을 벌인다. '예술 전사' 이불 씨는 지난해 10월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의 작품전에서 건축적 환경 개념을 탐구한 드로잉을 처음 선보였다. 영화 '잠수종과 나비'로 2007 칸영화제와 2008 골든글로브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해진 줄리앙 슈나벨은 이미지를 강조한 화풍으로 세계 화단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영역을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이들 예술가의 가장 큰 고민은 창조성이다. 관람객들에게 쉽게 다가가면서도 관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얘깃거리를 얼마나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이다. 무조건 융합만 한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디어 아트 등 융합전시도 활발올 들어 하이브리드 아트가 주목받으면서 전시회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은 내달 2일부터 '하이브리드 코드-융합으로 구현된 예술가의 창의성'을 주제로 새해 첫 기획전을 연다. 건축,심리학을 미술에 차용하거나 융합하는 하이브리드 아티스트 17명이 참여해 근작 20여점을 건다.

서울대학교미술관은 내달 2일부터 4월10일까지 미디어 아트와 게임을 융합한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전을 펼치고,서울 한남동의 식스갤러리는 오는 25일부터 5월1일까지 미디어 설치작가 다쓰오 미야지마 개인전을 통해 첨단 테크놀로지와 동양 생명 사상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다.

아트선재센터 3층에서 25일부터 5월1일까지 진행되는 'H박스'전은 패션과 미술의 만남을 비디오 영상으로 보여준다. 공학을 활용해 미래의 생명체를 보여주는 설치작가 최우람 씨는 오는 6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 뮤지엄 작품전에 신작 '신의 연못'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명옥 사립미술관협회장은 "전통 회화,조각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거치면서 다른 장르에 자양분을 제공하던 소스에 머물지 않고 장르 간 '교류와 소통의 창구'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며 "현대미술과 타 분야의 융합 현상이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