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東·북아프리카 민주화 시위 격화] 리비아軍 발포, 엿새간 170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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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모로코 '왕국'으로 확산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 열풍이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다. 리비아와 예멘에선 계속되는 시위에 정부가 강경 진압으로 맞대응하면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강경진압을 선언했던 이란을 비롯 알제리 쿠웨이트 지부티 등에서도 잇따라 시위가 발생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치체제를 유지해 왔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등 왕정 국가에서도 시위가 확산될 조짐이다. "튀니지와 이집트혁명이 중동 국가에 잠재돼 있던 민주화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타임)는 분석이다.
예멘 사망자 10명으로 늘어
알제리·쿠웨이트·지부티도 시위…바레인은 대화 재개 분위기
美전문지 "軍이 정국향방 열쇠"
◆리비아 · 예멘 강경대응리비아에선 20일 제2의 도시인 벵가지를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엿새째 계속됐다. 수천명의 시위대는 이날 42년간 집권한 무아마르 카다피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리비아 정부는 군대와 탱크를 시위 현장에 투입해 강경진압에 나섰다.
군 저격수들은 총격으로 사망한 35명의 희생자를 조문하기 위해 장례식장에 모인 수천명의 군중을 향해 19일 조준 사격을 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날에만 최소 15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엿새 동안 170여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리비아 정부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고,언론사 취재도 금지했다. 또 친정부 세력들이 수도 트리폴리 등지에서 카다피의 초상화를 들고 지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AFP통신은 "카다피가 인근 국가들의 정권 몰락에 두려움을 느끼고,초반부터 반정부 시위에 강경진압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카다피는 지난달 튀니지의 벤 알리가 축출됐을 당시 "튀니지인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다만 카다피가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지세력이 많기 때문에 정권이 쉽게 붕괴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예멘 수도 사나에서도 19일 경찰이 수천명의 시위대에 실탄을 발사해 1명이 숨지고 최소 5명이 다쳤다. 반정부 시위 열흘째를 맞아 사나대에서는 시위대가 경찰들과 투석전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한 남성이 경찰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예멘 사망자는 10명으로 늘어났다.
32년간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 예멘 대통령은 이날 민간 지도자들과의 회동에서 "최근 소요사태는 국가불안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을 잡으려는 외부세력의 시도"라고 주장했다. ◆각국의 정국 향방 모두 군부가 결정
이란에서도 20일 수천명의 시위대가 수도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앞서 이란 정부는 반정부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선언함에 따라 시위대와 경찰의 유혈 충돌로 수십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지난 14일 시위를 주도했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와 메흐디 카루비 등 야당 지도자들은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선 19일 반정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같은날 홍해 연안 소국 지부티에서도 1999년부터 장기 집권해온 이스마엘 오마르 구엘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시위로 경찰 1명을 비롯 모두 2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왕정국가인 모로코에서 20일 수천명의 시위대가 거리로 나와 국왕인 모하메드 6세의 권력 제한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대는 국왕에게 현 정부와 의회를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쿠웨이트에서도 처음으로 시민권을 요구하는 유목민들의 시위가 발생,30여명이 부상당했다.
반면 정부의 강경진압으로 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바레인에서는 조금씩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셰이크 살만 빈 하마드 알 칼리파 왕세자는 19일 수도 마나마 진주광장에 주둔해 있던 군 병력과 장갑차들을 철수시켰다. 또 정부는 모든 야당 세력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정부의 이 같은 유화 제스처가 바레인에 제5함대 기지를 두고 있는 미국이 "정치 개혁에 나서라"고 촉구한 데 따른 조치라고 분석했다.
미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CSM)는 "중동국가의 반정부 시위 성공 여부는 이집트처럼 군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장기 독재정권 치하에서 야당 세력이 뿌리내릴 수 없었던 탓에 정권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 군부라는 얘기다. CSM은 "정권이 군부를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란 등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