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사태 악화일로] '中東 정치불안→유가급등→세계경제 충격' 과거 패턴 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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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가 어디까지 오를까…오일쇼크의 역사중동지역의 정정불안은 늘 유가불안으로 이어졌고 세계 경제 충격의 원인이 됐다. 튀니지와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사태가 악화되면서 또 한 차례 석유파동이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된다.
리비아는 하루 최대 165만배럴의 석유를 생산하는 북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이다. 세계 전체 석유 수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로 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반정부 시위가 다른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로도 확산되고 있어 불안감은 커진다. 전 세계 원유의 약 30%를 공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등지에서도 정치 · 사회적 불안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 경제에 타격을 입힌 오일쇼크는 1973년과 1979년에 각각 일어났다. 제1차 석유파동은 1973년 발생한 이스라엘과 아랍권 간 중동전쟁이 석유전쟁으로 번지면서 1974년 초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OPEC 회의에서 페르시아만의 6개 석유수출국이 원유 가격을 17% 인상했고 팔레스타인의 영토 주권을 회복하는 시점까지 매달 원유 생산을 전월 대비 5%씩 감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국제 원유값은 1973년 배럴당 2.59달러에서 1년 만에 11.65달러로 4.5배나 뛰었다. 그해 세계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제2차 오일쇼크는 1978년 말 이란의 국내 정세 혼란과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인해 불거졌다. 당시 세계 석유공급량의 15%를 차지한 이란이 전면 수출 금지를 결정하자 석유업자들의 시장 조작과 매점매석이 횡행했다. 1980년 8월 이란과 이라크 간 전쟁이 발발하면서 배럴당 30달러를 돌파한 뒤 고공행진을 거듭한 유가는 1981년 10월이 돼서야 배럴당 34달러 선에서 안정됐다. 1978년의 배럴당 12.70달러와 비교해 2.7배 오른 것이다. 이때도 물가 급등으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등 세계 경제는 어려움을 겪었다.
1990년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벌어진 걸프전으로 유가가 배럴당 17달러에서 40달러 선까지 뛰었다. 이후 배럴당 24달러 선을 유지하던 국제유가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이후 30달러 후반대로 올라섰다. 캐피털 이코노믹스 관계자는 "시위가 리비아보다 산유량이 더 많은 국가로 확산된다면 국제유가가 수주 내에 배럴당 14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이번 사태가 또 다른 오일쇼크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로렌스 이글스 JP모건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으로 볼 때 내부 정치적 혼란으로 석유 공급이 장기간 차질을 빚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민심 수습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석유 수출을 늘릴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