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Better life] 1인당 원리금 5000만원 보호…후순위채·CD·CMA는 제외

예금자보호제도 가이드

금융사 324곳 예금보험 가입
영업정지땐 2000만원 선지급
외화예금·금융채는 손실 불가피
세계 각국은 일부 금융회사 부실이 전체 금융시스템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동일한 종류의 위험을 지닌 사람들이 평상시에 돈을 모아 기금을 적립해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다'는 보험 원리를 예금 상품에 적용시킨 것이다. 국민들의 소중한 재산이 맡겨져 있는 금융회사가 영업 정지나 파산 등으로 고객 돈을 돌려주지 못한다면 국가경제 질서에 커다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뱅크런 막고 은행 연쇄도산 방지예금보험기구는 금융회사가 부실 등으로 예금의 원금이나 이자를 지급할 수 없을 때 해당 금융사를 대신해 예금주에게 원금과 이자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한다. 예금의 원리금을 보장해줌으로써 금융회사에 대한 막연한 불안심리나 부정확한 정보로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일어나 금융시스템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은행권이 한국은행의 긴급대출에 의존할 수 있었던 덕분에 별도의 예금보험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고가 잦았던 비은행권은 1970년대부터 잇따라 기금을 설립하는 등 고객 신뢰를 높이기 위해 유사한 제도를 운영해왔다. 1972년 상호신용금고(현재의 저축은행)는 예금자 보호를 위해 상호신용보장기금을 처음 설립했다. 1983년 새마을금고연합회도 새마을금고연합회 안전기금을 만들었다. 1989년 4월에는 보험회사를 대상으로 보증보험기금이 설립됐으며 1997년 4월부터 증권투자보호기금이 생겼다.

◆1996년 예금보험공사 설립은행권에서 1995년 예금자보호법이 제정되고 1996년 이 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설립됐다. 이로써 예금보험제도가 공식 출범했다. 이후 외환위기로 1998년 4월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관련 기금이 예금보험공사로 통합됐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예금보험제도는 각 업종(업권)별로 예금보험공사에 집중되는 시스템으로 재편됐다.

다만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농협협동조합 산업협동조합 산림조합 등 상호금융회사들은 조합원들의 상호 부조를 목적으로 설립된 까닭에 아직까지 자체적인 예금보험제도를 운영 중이다. 또 우체국 예금 및 보험은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을 보장하고 있어 역시 예금보험공사의 보험 가입(부보 · 附保)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이에 따라 보험 가입 대상 금융회사는 현재 총 324곳으로 △은행 54곳 △증권(자산운용 선물 등 포함) 119곳 △보험 44곳 △종합금융사(종금) 1곳 △저축은행 106곳 등이다.

각 금융회사가 위험에 대비해 내는 보험료는 업권에 따라 다르다. 정부(예금보험공사)가 지급을 보장하는 보호 대상 금융상품(예수금)의 총액에 법정 요율을 곱한 금액을 매달 예금보험공사에 납부한다.
◆1인당 원리금 5000만원까지만 보호

보호 대상 금융상품은 개인 및 법인의 예금 보험계약 예탁금의 원금 및 이자 등이며 금융채 양도성 예금증서(CD) 실적배당신탁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예금보험공사가 지급하는 보험금의 한도는 한 금융회사당 원금과 이자를 합쳐 예금자 1인당 5000만원이다. 처음에는 1인당 2000만원이었으나 1998년 외환위기 발생 직후 당시의 금융 불안을 고려해 1997년 12월 관련 법령을 개정,2002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원리금 전액을 보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부실화한 일부 금융회사가 높은 금리로 예금을 무리하게 유치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1998년 8월 이후 가입한 예금에 대해서는 원금이 2000만원 이내일 때는 2000만원 한도 내 원리금을,2000만원을 초과할 때는 원금만을 보장하기로 바꿨다. 또 2001년 예금보험제도를 전액 보호 제도에서 부분 보호 제도로 환원하면서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보호 한도를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회사의 영업정지 등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금융사에 예금한 고객 등의 청구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한다. 다만 해당 금융사의 청산이나 파산,타금융기관으로의 인수 등 절차가 끝나는 시점에 보험금을 지급하므로 실제 고객이 돈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게 된다. 예금보험공사는 영업정지에 따른 예금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보험금 한도 내에서 예금보험위원회가 정하는 금액(현재 2000만원)을 가지급금으로 선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도덕적 해이 조장한다는 비판도

이 같은 예금보험제도는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장치지만 금융사의 도덕적 해이나 역선택 등의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저축은행 부실 문제다. 저축은행의 모태는 상호신용금고다. 정부는 1998년 상호신용보장기금을 예금보험공사에 편입시켰고 2002년에는 명칭도 저축은행으로 바꿨다. 그 결과 저축은행 고객들은 은행이란 이름을 신뢰해 안심하고 돈을 맡겼다. 이는 곧 저축은행들의 수신액 증가로 이어졌다. 저축은행들도 예금 유치를 위해 예금 보장을 받을 수 있게 가족 등의 명의로 예금을 분산하도록 권유하는 행태도 나타났다.

저축은행들은 이렇게 모은 고객 돈으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리스크가 큰 투자를 일삼았다. 2006년에는 정부가 우량 저축은행들에 기업에 빌려줄 수 있는 대출한도(80억원)를 풀어줌으로써 거액의 대출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대출 규모는 1년 만에 두 배 이상 늘기도 했다. 그러나 2006년을 정점으로 부동산 호황기가 막을 내리면서 이런 투자는 대거 부실화했고 결국 지난해부터 문을 닫는 저축은행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럼에도 현행 예금보험제도가 부실 예방 기능보다는 보험금 지급과 사후 부실 처리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저축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차등보험제 실시

선진국들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예금보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다만 미국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은 금융회사별 위험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매기는 차등 예금보험료 제도를 실시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

미국의 예금보험공사 격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한 은행 시스템 붕괴를 계기로 예금자 보호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1933년 은행을 대상으로 한 예금보험기구로 출범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연방저축대부조합예금보험공사(FSLIC)가 지급 불능에 빠지자 1989년 금융기관개혁법(FIRREA)에 의해 저축은행 및 상호금융회사의 예금보험도 관할하게 됐다. FDIC는 현재 연방준비제도에 가입하지 않은 지역 은행과 지역 저축은행 등에 대한 일반적인 감독권한을 행사한다. 프랑스에서는 예금보험기금(FGB)이라는 독립적인 민간 기구에서 예금보험 기능을 맡고 있다. 1999년 설립된 이 기금은 기금관리위원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 예금기관 및 투자회사에 예치한 예금 증권상품 등에 대해 보호를 받는다. 보호 한도는 1인당 7만유로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