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미 깨졌다

남한 핵만이 北核 상쇄할 수 있어
전술핵 재배치 적극 논의해야
북한의 핵 위협에 맞서 우리도 스스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집권 여당 일각에서 힘을 얻고 있다. 오랫동안의 묵시적 금기(禁忌)를 깬 문제 제기다. 실현 가능성은 제쳐 놓더라도 논의 자체를 피할 까닭은 없다. 북의 핵은 이미 엄연한 현실이다. '불바다'도 모자라 이제는 걸핏하면 '핵 참화'라는 극단적 협박을 일삼는 북의 도발에 눈 감고만 있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물론 핵무장론은 무척 민감한 사안이다. 원한다고 해서 우리 의지대로 이뤄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자체 핵 개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도 간단하지가 않다. 남한 땅에서 핵무기가 사라진 것은 20년 전이다. 미국이 주한 미군에 배치했던 200여기의 전술 핵을 철수한 1991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핵 부재(不在) 선언이 있었고,그 해 12월31일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남북이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보유 저장 접수 배비(配備) 사용을 금지하고,핵에너지는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며,핵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였다.

하지만 북의 김정일이 이 선언문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지는 오래다. 북은 2006년과 2009년 플루토늄 핵무기의 1,2차 실험에 이어 곧 3차 핵실험에 나설 태세다. 이제 더 위험한 우라늄핵까지 가지려 하고 있다. 대규모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시설도 버젓이 공개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는 사문화(死文化)된 이 비핵화 선언을 스스로 족쇄 삼고 있다. 북핵에 관한한 우리 정부는 답답하리 만큼 비핵화 선언에 갇혀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북의 핵 공갈에 벌거벗은 채 당하고만 있는 꼴이다.

분명한 것은 6자회담으로 북을 비핵화시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북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은 2003년 8월 베이징에서의 첫 회의 이후 8년이 지나고 있지만 그동안 이뤄낸 게 없다. 오히려 북은 핵실험으로 회담국들을 농락하고,의장국이라는 중국은 한술 더 떠 "북한도 핵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북핵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북이 그들의 유일한 협상 무기이자 협박 수단인 핵을 단념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일단 핵을 보유한 나라가 스스로 그걸 폐기한 전례 또한 없다. 북에 대한 그러한 기대는 아예 접는 게 좋다. 6자회담을 고집하더라도 이제는 다른 틀을 모색해야 한다. 새로운 협상구도를 만들기 위한 대안적 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역시 해법은 핵이다. 핵에 대한 억지 수단은 핵밖에 없다. 우리가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북이 쓰지 못하게 하기 위한 핵이다. 핵은 가장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살상무기이지만,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적대적 쌍방이 함께 핵을 가졌을 때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핵의 역설(逆說)이다. 핵을 가짐으로써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현실의 문제는 우리에게 핵 주권이 없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핵 주권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핵 물질을 다루는 데 있어 우라늄 정련과 농축 가공 발전 재처리로 이어지는 원자력발전소의 핵연료 주기조차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에 의해 농축과 핵연료 재처리라는 결정적인 단계에 대한 접근이 원천 봉쇄된 탓이다. 이 핵심 과정의 독자성을 갖지 못하는 한 우리의 핵 개발은 불가능하다. 미국은 북한 핵을 막는 데 실패하고 우리의 핵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양상이다.

결국 선택 가능한 결론은 미국의 핵우산이다. 전술핵의 재배치가 그래서 필요하다. 그 자체가 가장 강력한 북핵 억지력이고 우리의 협상 무기다. 북핵을 상쇄시키기 위한 남한의 핵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이뤄내기 위한 단초(端初)가 될 수 있다. 20년 전의 비핵화 선언,그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가로막고 있다.

추창근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