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김범수 카카오 사장, '1000만 국민 메신저' 만든 벤처 승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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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탐구"언젠가는 유료화를 해야겠지만,지금은 절대 아닙니다. "
한 달도 1년도 아닌, 딱 6개월 뒤 상상하면 '답' 보여
결정 못하는 리더는 '최악'
닷컴 붕괴 때 한게임 유료화…게임 테스트 위해 PC방 창업
'제2 김범수' 만들기 올인
웹ㆍ모바일 석권한 노하우로 글로벌型 벤처기업인 육성
2000년 9월,김범수 NHN 사장(45 · 현 카카오 사장)은 임원회의에서 한게임 유료화를 주장하다가 이 같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불과 6개월 전 몰아닥친 벤처 거품 붕괴로 전 세계 정보기술(IT) 주식이 폭락하고 국내에서도 폐업하거나 부도가 나는 업체가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투자 심리가 싸늘하게 얼어붙어 투자 유치는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김 사장은 유료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쓸 곳은 계속 늘어나는데 자금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임직원들 대부분은 섣불리 유료화를 했다간 고객들이 줄줄이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시 돈을 받는 인터넷 서비스는 없었다. 실제로 NHN이 한게임 유료화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나자 이에 반대하는 사용자들의 글이 게시판에 빗발치기 시작했다.
김 사장은 이런 상황을 무릅쓰고 유료화에 착수했다. 네이버 서비스를 맡고 있던 김정호 이사까지 한게임 쪽으로 불러들여 한게임 유료화에 '올인'했다. 한게임 창업멤버였던 남궁훈 이사(현 CJ E&M 게임부문 대표)는 "김 사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한게임 유료화는 그렇게 빨리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들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2001년 3월16일,6개월간 준비한 한게임 유료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그날 하루 동안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PC방으로 사업 밑천 마련
김 사장을 가리킬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 '승부사'다. '용기와 상상력'은 이를 수식하는 말로 종종 쓰인다. 한게임 창업부터 유료화,일본 진출,NHN 퇴사,새로운 창업,카카오 개발 등 고비 때마다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흉내내기 힘든 상상력과 과단성을 발휘해 성공으로 가는 길을 뚫어냈다.
그는 "최악의 리더는 결정하지 않는 리더"라는 말을 하곤 한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순간에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이라는 것.한게임을 창업할 때 상황도 비슷했다. 삼성SDS를 다니다 나온 그는 1998년 2월 서울교대 근처 오피스텔에서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IMF 외환위기 직후라 직원 구하기가 어려웠고 사업도 잘 안됐다. 10여명의 직원으로 출발했지만 도중에 다 나가고 1명만 남았다. 그해 여름에 사채까지 동원, 2억5000만원의 자금으로 PC방을 차렸다. PC방을 운영해 게임 사업 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직접 테스트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이왕 할 거 크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당시 한양대 앞에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PC방을 차렸다. 잘못하면 쫄딱 망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PC방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때 경험으로 그는 게임 회사 경영뿐 아니라 최일선의 PC방 영업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카카오톡 창업도 과감한 도전정신을 밑거름으로 한 것이었다. 김 사장은 NHN과 카카오의 성공으로 항상 성공만 하는 인물로 그려지곤 하지만 2007년 가을에 NHN을 나와 2010년 봄 카카오톡을 출시할 때까지 2년 반의 기간 동안 그는 계속 실패를 경험했다.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돈만 계속 나갔다.
그러던 중 2009년 10월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는 것을 보면서 전환점을 마련했다. 당시 "스마트 모바일 혁명으로 앞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모바일 시대에 적합한 앱을 만드는 데 회사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다. 2010년 3월,카카오톡이 나오자마자 10만명이 다운로드 받는 것을 보고 다시 승부사적인 결단을 내렸다. 기존에 준비하고 있던 모든 다른 앱 개발을 중단하고 카카오톡에 올인하기로 한 것이다. 카카오톡은 출시된 지 1년여 만인 4월1일 1000만명을 돌파했다. ◆"6개월 원칙으로 승부"
그는 자신의 승부 호흡으로 '6개월 원칙'을 꼽는다. "내일이나 한 달은 너무 기간이 짧아 도움이 안되고 1년 이상은 너무 길어 대응이 늦어요. 딱 6개월이 좋습니다. 6개월 후를 생각하고 결정하면 크게 실수하지 않아요. "
그는 이런 원칙을 삼성SDS에 입사할 때부터 지켜왔다. 1991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학원을 다니던 김 사장은 후배 사무실에 들렀다가 PC 통신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자유로운 온라인 세상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고 게임을 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다.
이듬해 초 삼성SDS에 입사했지만 프로그래밍도 모르는 그가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리고 동료 직원들이 거의 모르고 있던 윈도와 C언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6개월 후 삼성SDS는 'C++ 프로그램'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물색했고,김 사장은 당연히 뽑혀갔다. 그리고 PC통신 유니텔의 프로그램 개발부터 기획 · 설계 · 유통 ·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섭렵하게 된다.
6개월 원칙은 NHN과 지금의 카카오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다. 그는 아이폰 도입 6개월 후에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은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카카오톡 개발에 착수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모두 선점하다
한게임은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이다. 거품 붕괴로 벤처기업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갈 때 최초로 수익 모델을 만들어 인터넷이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카카오톡 역시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보급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저마다 신천지가 열렸다고 열광했지만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마트폰 서비스는 등장하지 않았다. 카카오톡은 국내 최초로 스마트폰 사용자의 절대다수가 쓰는 서비스다.
NHN과 카카오톡의 성공으로 김 사장은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 PC 기반의 웹 시대와 모바일 시대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인물이 됐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다.
그는 이런 성과가 가능했던 이유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욕구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시대나 모바일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원래 없던 욕구가 어느날 갑자기 생기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실행하는 것에서 승부가 납니다. "
다른 IT 종사자들처럼 '기발한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깜짝 아이디어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김 사장은 인터넷 시대를 검색이 지배했다면 모바일 시대는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1차적으로 필요한 것이 메신저다. 카카오톡은 그래서 나왔다.
◆"평생 벤처기업인 육성하겠다"
2007년 가을,NHN을 나온 직후 그는 "후배들이 사업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며 "한국이 100명의 능력 있는 벤처기업인을 배출할 수 있도록 자금과 노하우를 지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그 첫 실증 사례를 보여줬다. 카카오가 직접 설립한 회사라면 그가 설립과 창업 자금을 지원한 포도트리는 벤처기업인 100인 육성의 첫 사례다. 지난달 포도트리가 출시한 영어공부 앱 '슈퍼 0.99'는 나오자마자 앱스토어 1위에 오르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김 사장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이 다시 입증된 것이다.
그에게 '10년 후에는 뭘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고 물었다. "글쎄요. 그때도 벤처를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하지만 벤처기업인을 육성하는 일은 계속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