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강국을 향해…한국판 DHL 키우자] (4) DHL 성장 비결은 M&A…'글로벌망 구축'이 승부 가른다

(4) 세계적 물류기업 만들려면

M&A만이 살길
美 UPS·쿠웨이트 어질리티, 인수합병으로 덩치 키워

해외로 새는 물류비
삼성전자에서만 한 해 2조원…글로벌 물류업체로 넘어가

국내 물류社 지원 시급
투자펀드·정책자금 조성…해외진출 지원센터 마련해야

"이제 물류업체도 해외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잇따라 추진되고 있고 2013년 아세안 10개국 물류시장이 개방되면 전 세계 물류시장은 갈수록 커질 겁니다. "(민정웅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경제위상에 걸맞은 물류기업이 없습니다. 국내 기업의 해외 물동량마저도 대부분 외국 물류업체로 넘어가고 있어요. 인수 · 합병(M&A) 등을 통해 글로벌망을 갖춘 대형 물류전문기업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임재국 대한상공회의소 물류혁신팀장)삼성전자가 부품조달과 제품운송을 위해 지난해 국내외에서 지출한 물류비용은 총 4조2000억원 선에 달하는 것으로 물류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해외에서 사용한 물류비는 3분의 2가 넘는 3조여원에 이른다. 삼성전자는 이런 해외 물류의 70% 이상을 외국 물류업체에 맡기고 있다. 유럽에선 물류업무의 상당 부분을 독일의 DP DHL에 맡긴다. 이 결과 삼성전자에선 작년에만 2조원이 넘는 물류비가 외국 업체로 빠져나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간 반면 물류업체들은 국내 시장에 치중하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연구실장) DP DHL,미국의 페덱스 · UPS 등과 같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물류 전문기업을 키우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M&A로 글로벌망 구축해야 "국내 기업 위주의 영업에 매달리고 있는 국내 물류업체의 글로벌화를 조기에 이루기 위한 해답은 M&A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글로벌 물류기업들도 대부분 M&A를 통해 덩치를 키워왔다는 설명이다.

세계 최대 물류업체인 DP DHL은 420여대의 자체 항공기를 운영하며 220여개국에 물류망을 깔아놓았다. 이 회사가 북한까지 배송가능 지역으로 끌어들이며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은 M&A를 통해서다. 1990년대 민영화한 독일 우체국(DP)은 1999년 유럽 최대 포워딩(운송대행) 업체인 스위스의 단자스를 인수한 데 이어 2002년 글로벌 특송회사인 미국 DHL을 사들여 단번에 글로벌망을 확보하는 동시에 특송시장 강자로 부상했다. 이듬해 미국 항공특송업체인 에어본까지 손에 넣었다. 2005년엔 세계 최대 '3자 물류' 전문기업인 영국의 엑셀까지 인수,우편 · 특송 · 포워딩 · 3자물류 등을 아우르는 글로벌 물류 전문기업으로 성장했다.

120여개국에 네트워크를 가진 특송업체인 미국 UPS의 성장배경도 M&A가 핵심이다. 크리스틴 오웬스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은 "1992년 영국 소화물 배달업체인 캐리패스트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3년 뒤엔 항공서비스업체인 미국의 소닉에어,2000년엔 유럽 포워딩회사인 프리츠를 인수했다"며 "2004년엔 미국의 중량항공화물 서비스업체인 '멘로 월드와이드 포워딩',2005년엔 미국 육상운송업체인 오버나이트를 차례로 사들였다"고 소개했다. 쿠웨이트의 중소형 보세창고 업체로 출발해 2008년 글로벌 물류기업 '톱10'에 오른 어질리티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2005년 한 해에만 미국의 지오로지스틱스 등 해외 물류업체 3곳을 인수했다. 2007년엔 유럽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치던 메드그룹,LEP인터내셔널 등을 편입시켰다. 2009년까지 5년간 인수한 곳이 13개사에 달한다. 스위스 퀴엔나겔과 독일 쉥커도 2006년 이후 각각 7건과 11건의 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했다. 서 실장은 "해외에서 물량을 수주하기 위해서는 레퍼런스(실적)가 필수적인데 M&A는 이를 단시일에 해결해주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물류 전문기업 지원 정책 절실"

전 세계 물류시장에서 M&A를 통한 네트워크 확장이 대세로 자리잡았지만,국내 물류업계의 글로벌 M&A 실적은 초라하다. CJ GLS가 2006년 싱가포르 포워딩 업체인 어코드익스프레스홀딩스를 사들인 것이 유일하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물류 전문업체의 투자여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임 팀장은 이와 관련해 "(해양수산부가 없어진 뒤) 물류정책을 총괄할 사령탑이 사실상 사라진 상태여서 일관된 정책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물류기업과 시설에 투자할 수 있는 '물류M&A펀드'를 만들거나 해외 투자 때 저리의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서 실장도 "공동진출지원센터를 만들어 국내 제조업체가 해외 사업을 벌일 때 국내 물류업체와 함께 진출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이에 필요한 부대비용 및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제조업체와의 동반진출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무역협회 국제물류지원단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체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하기 때문에 물류업체들이 일정 규모 이상의 물류망만 갖춘다면 제조업체와 동반 진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민 교수는 특히 "대형 물류전문기업 육성은 제조업체들이 연구개발 마케팅 등 핵심 분야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12배에 달하는 물류시장에서 부(富)를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홍열/김철수 기자 kc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