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전관예우의 불편한 진실

명백한 병폐…당사자엔 미풍양속
단순규제보다 근본대책 찾아야
최근 전관예우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가 변호사법을 개정하는 등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전관예우라는 네 글자 단어가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 그와 관련된 불편한 진실이 너무나도 많다.

전관예우의 불편한 진실 하나. 당사자들은 전관예우를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근원적 병폐로 지탄받아 왔지만,정작 전관예우라는 거래에 참여하는 장본인들에겐 죄의식이 없다. 법조계에는 심지어 전관예우를 선후배 사이의 미풍양속으로 옹호하는 정서마저 상존한다. 반면 전관예우 문제의 해법은 대부분 이미 알려져 있다. 받는 자와 주는 자 간의 구조적 연계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므로 주는 자가 전관에게 예우를 해 주지 말도록 하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전관예우의 핵심은 '전직 대법관 예우'라며 당사자들의 자정 의지에 방점을 찍거나 받는 사람 스스로 예우를 포기하는 미덕으로 솔선수범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법무법인으로 가지 않고 퇴임한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의 얘기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작 판사나 검사들 중 전관예우를 죄악시하거나 고질병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전관예우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눈초리를 못 마땅하게 여기거나 기회만 된다면 그런 혜택을 마다할 것까지 있겠냐는 시각도 적지 않다.

행정관료들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박봉(?)에도 나라를 위해 봉직했는데 퇴직 후 그 정도도 누리지 못한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는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른 나라에서도 대형 로펌이나 기업이 정부 고위직에 있던 사람을 영입하는 일이 보편화돼 있는데 뭐가 문제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불편한 진실 둘.최근 변호사법 개정으로 전관 변호사 수임 제한 조항이 도입됐지만 전관예우가 근절되거나 크게 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퇴직 전 1년부터 퇴직한 때까지 근무한 법원,검찰청,군사법원,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경찰관서 등 국가기관이 처리하는 사건을 근무 종료일로부터 1년 동안 수임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 조치로 과연 사법과 공직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수임제한의 법망을 피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고 또 그 효과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행정관료에 대해선 이미 공직자윤리법이 대책을 마련해 뒀다. 공무원이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나 협회에 퇴직일부터 2년간 취업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도 허점들이 즐비하다. 관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자본금이 50억원 미만이거나 외형거래액이 연간 150억원 미만인 기업체에 취업하는 경우,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사무를 위탁받은 협회에 취업하는 경우 등은 예외로 돼 있다. 게다가 퇴직 전 근무 부서를 바꾸는 '경력 세탁'이나 법망을 피해 부설 연구소 임직원 등으로 우회 취업하거나 비상근 고문,사외이사 등으로 '위장 취업'하는 편법도 성행한다고 한다.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진실은 법조인과 공직자의 유전자(DNA)와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전관예우의 근절은 난감하다는 것이다. 수임이나 취업 제한 같은 규제조치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고칠 수는 없다. 죄책감을 모르는 수혜 집단이 존재하고 편법,탈법의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한,전관예우는 '초강력 사이버 나이프'로도 도려낼 수 없는 암세포처럼 우리나라 상류에 계속 살아남아 전이될 것이다. 그러니 국회나 정부 그 누구도 법조항 몇 개 마련했다고 안도할 일이 아니다. 일회적 처방이 아니라 긴 호흡,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장기전 채비가 필요하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