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미국發 세계경제의 어두운 그림자

경기 꺾여도 정책수단 많지 않아…하원 장악한 공화당 태도가 관건
세계 경제가 다시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매월 22만개 정도 일자리를 만들더니 5월에는 5만4000개로 뚝 떨어졌다. 실업률도 9.1%로 다시 올라갔다. 유럽연합(EU)은 그리스 재정 파탄으로 또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거기에다 세계경제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해 오던 중국도 지난 위기 때 쓴 팽창적 통화정책의 후유증으로 인플레이션과 함께 부동산 거품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EU 문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가 유로 사용을 포기하는 것이 간단한 해법이지만,그것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중국의 문제도 간단치 않다. 인플레이션은 성장률을 낮추면 잡을 수 있겠지만,부동산 거품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1990년대 일본처럼 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온다.

반면 미국의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다. 확장적 재정정책을 쓰면 되기 때문이다. '양적 완화' 통화정책으로 돈이 넘쳐나는 상태에서 재정정책을 쓰면 당장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간단한 논리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재정정책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국가채무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지난 1년여간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측에서도 국가채무 문제를 간과한 것은 아니다. 단기적 경기 부양과 함께 장기적 적자 감축 방안을 '패키지'로 추구해 왔다. 재정정책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낭비라고 보기도 어렵다. 미국에 간 한국인이 느끼듯이 누더기 같은 고속도로나 느려터진 철도의 사정을 개선하는 것이 결국 생산성을 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 외에도 교육이나 연구 ·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재정정책이 성장 잠재력을 올릴 수 있는 여지는 많다.

미국이 재정정책을 쓰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와 민주당은 쓰고 싶어 하지만,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꿈도 꾸지 마라는 식이다. 두 정당의 차이는 국가채무를 줄이는 방안에서도 나타난다,민주당은 교육 의료 등의 지출은 안 줄이고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올리자고 주장하는 반면,공화당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은 올리지 말자고 한다.

여기서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쪽은 공화당이다. 공화당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줄기차게 추진한 결과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책임을 느끼기는커녕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국가채무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 내 진보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증세는 조금만 하고 지출을 대폭 줄이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공화당은 세금은 한 푼도 못 올린다며 요지부동이다. 부시 정부 때 명분 없는 전쟁과 '부자 감세'로 국가채무를 천문학적으로 늘려 놓은 데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재정정책을 쓸 수 없으니 고육지책으로 나온 것이 양적 완화 통화정책이다. 그러나 이 정책도 환율전쟁을 일으킨다는 등 국내 · 외의 비판에 직면해 더 쓰기 어렵게 됐다. 이제 미국은 쓸 수 있는 부양책이 없는 상태로 경기가 스스로 회복되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면 미국의 경기 후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단히 보아 넘기기 어려운 것이다.

비록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은 '미국의 시대'다. 유럽은 나뉘어 있고,중국은 갈 길이 먼 개도국이다. 따라서 미국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은 바로 '세계의 문제'다. 그 바탕에는 공화당의 경직된 모습이 놓여 있다. 공화당이 좀 더 합리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회복하는 데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장래가 달려 있다.

이제민 < 연세대 경제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