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 인터뷰] "선거에 경제정책 휘둘리는 게 가장 걱정"

● 세계 경제를 말하다

美 월간 단위로 경제 관리…중ㆍ장기적 마인드 실종
재정적자 해소 방안도 내년 대선 끝나야 나올 듯
그리스에 단기적인 처방 땐 또 다른 경제위기 초래
복지·성장 균형발전 이룬 스웨덴·덴마크 모델 선호

"세계 질서가 미국 중심의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바뀌면서 국제 현안을 조율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57 ·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장 겸임)는 냉전시대가 끝나면 강력한 리더십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히려 세계 금융 불안정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잉태한 국제통화기금(IMF)이 장기적 안목으로 글로벌 도전에 대처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새 총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삭스 교수는 미국의 정책 결정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이 커져 임기응변식 단기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 세계를 누비며 빈곤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삭스 교수로부터 세계 경제 현안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21일(현지시간) 전화로 진행됐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지속되는 등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제 시스템이 미국 주도의 단극 체제에서 다극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부상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은 재정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선진국의 재정 적자를 오히려 중국과 같은 개발도상국이 메워주고 있습니다. 경제 환경이 바뀐 만큼 IMF,유엔 등 국제기구의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

▼세계 경제에서 가장 걱정스런 현상은 무엇입니까.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데 뚜렷한 중장기적인 전략과 계획이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 경제는 5~10년 단위가 아니라 월간 단위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중 · 장기적인 마인드가 없다는 뜻입니다. 경제 정책에 정치적인 입김이 지나치게 많이 작용합니다. 미국에서 2년마다 전국 단위의 선거가 있는 탓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국가들이 근시안적인 사고로 경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 혹은 2030년에 어떤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

▼미국 정치권이 재정적자 해소 방안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어떤 당도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갖고 있지 않아요. 무엇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보다 강력하고 체계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아마도 2012년 11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정치권이 근본적인 대처방안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도 심각합니다.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유로는 살아남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외부의 지원이 필요한 남유럽 국가들은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압력 탓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에 단기적인 처방을 부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또 다른 불안정과 위험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유럽의 재정위기 해소 여부는 얼마나 중 · 장기적인 시각으로 대처방안을 세우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

▼친시장적인 자유주의자인지 아니면 평등적 복지 옹호론자인지 궁금합니다. "고소득 국가 중에는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 모델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들 국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균형 있는 발전을 했습니다. 사회적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환경을 관리하고 금융을 규제하는 데 정부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시장경제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요. 사회적 민주주의가 가장 유효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

▼저서 '커먼웰스(Common Wealth)'에서 빈곤퇴치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요.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을 적절히 활용하면 극단적인 빈곤퇴치는 결코 꿈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이뤄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병을 통제할 수 있게 됐고 더 좋은 비즈니스개발 모델과 교육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 빈곤퇴치운동(millennium villagers project)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운동을 추진하는 데 많은 한국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한국의 경제 발전을 높이 평가해왔는데요.

"한국은 성공적인 경제 및 사회 성장 모델 국가입니다. 한국의 교육열이 이런 성공을 가져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하면서 한국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겸손하고 창의성도 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주도하고 지금은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창용 씨와 ADB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다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을 맡고 있는 이종화 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들은 삭스 교수가 하버드대에서 재직할 때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이 성공한 이유로 국민들의 근면성과 윤리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


◆ 제프리 삭스 교수는…97년 외환위기 때 IMF 고금리 정책 비판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으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로 근무했다. 2002년 컬럼비아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유엔 밀레니엄 프로젝트 사업에 관여,새천년개발계획을 수립하는 데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경제개발과 환경유지 및 빈곤퇴치 문제를 연구하는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고 있다. 동유럽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전환할 때 각국에 자문을 해줬다. 1980년대 말 볼리비아 대통령 자문역을 지내면서 4만%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을 10%대로 끌어내리는 데 기여했다. 이후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개발도상국의 금융개혁 자문을 맡았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제금융 조건으로 부과한 고금리 처방을 강하게 비판해 한국에도 많이 알려졌다.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법치와 경제개혁(1997년) △빈곤의 종말(2005년) △커먼웰스(2008년) 등이 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