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달러 위상으로 본 국제 金값…3000달러 돌파하나

국제통화질서 변화가 금값 좌우…달러 약화로 고공행진 지속할 듯
금값이 폭등하고 있다. 이미 온스당 1600달러대에 진입한 데 이어 30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예상도 눈에 띈다. 2차대전 이후 금값에 영향을 미친 요소는 수없이 많았지만 추세적으로 국제통화질서와 미국 달러 위상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2차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는 세 단계로 구분된다. 첫 단계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출범한 이후 1971년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기까지의 '브레턴우즈 체제'다. 이때는 중심통화로 달러 위상이 확고했고,달러 가치도 금에 의해 완전히 보장됐다. 이 때문에 달러에 대한 대체수요로 금을 보유할 필요가 없었다. 달러와 금이 동일시됐기 때문이다. 또 세계 교역 규모가 크지 않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달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브레턴우즈 체제 기간에 달러와 금값의 움직임을 보면 추세적으로 거의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괴리가 없었다.

하지만 세계 경제 발전과 글로벌화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세계 교역 규모가 197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달러 가치를 더 이상 금으로 보장할 수 없었다.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던 배경이다. 그 뒤 국제통화질서는 과도기인 '스미스소니언 체제'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에는 달러 가치가 금에 의해 완전히 보장되지 않음에 따라 달러 가치와 금값 간에 괴리가 서서히 발생했다.

현 국제통화질서인 자유변동환율제가 정착된 것은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다. 이 시기에 각국의 통화가치는 원칙적으로 자국 내 외환수급 여건에 맡겨 결정짓도록 했다. 물론 달러 가치도 금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엄밀히 따진다면 달러와 금 간에 대체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킹스턴 체제로 전환한 이후 각국의 통화 가치는 자국 내 외환수급 여건에 맡겨졌지만 외환보유나 각종 결제통화 비중으로 보면 달러가 여전히 제일의 중심통화 역할을 담당하는 '신(新)브레턴우즈 체제'가 지속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달러 위상이 떨어지면서 대체수요로 금 보유가 늘어나 국제 금값은 추세적인 상승기에 접어들었다.

달러 가치와 금값 간에 괴리현상이 벌어진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였다. 이때를 계기로 달러 위상이 급격히 떨어지고 달러 중심의 신 브레턴우즈 체제도 붕괴 조짐을 보이면서 금값이 단기간에 급등하는 '슈퍼 스파이크'와 상승국면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슈퍼 사이클' 단계에 진입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달러 가치의 움직임이 여전히 심상치 않다. 특히 올 들어 달러 가치는 재스민 혁명,유럽 재정위기,일본 지진사태 등이 잇달아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세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최근 들어 중심통화로 달러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당사국 요인.미국 경기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인해 달러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효과(stigma effect)'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 조짐도 가세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계기로 현 국제통화 제도가 안고 있었던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 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앞으로 새로운 중심통화 논의가 빈번해지고 국제통화질서도 크게 변할 것으로 보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까지 새로운 중심통화 논의는 '투 트랙'으로 진행돼 왔다. 하나는 글로벌 차원에서 논의되는 것으로 중국이 제안한 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사용하는 것과 라틴어로 '지구'라는 의미의 '테라(terra)'를 창출하는 방안 등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동통화 도입 논의다. 현재 지역공동체가 결성된 곳은 대부분 공동통화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고,진전이 빠른 곳은 실행에 옮기다 유럽 재정위기를 계기로 주춤거리고 있다. 아시아만 하더라도 1980년대 이후 '엔화 블록권→엔민폐(엔화+인민폐)→아시아 유로화' 순으로 꾸준히 논의돼 왔다.

2차대전 이후 '브레턴우즈→스미스소니언→킹스턴 혹은 신 브레턴우즈 체제'로 대변되는 달러중심체제 균열은 불가피해 보인다. 공급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특정 몇 개국에 쏠려 있는 금시장의 특성상 그때그때 발생하는 재료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제 금값의 고공행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