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 '필살기' 조정장선 작동 불능?
입력
수정
한국창의·브레인 등 자문사 주식비중 조절 거의 안 해…쏠림투자로 수익률 비실자문형 랩이 지닌 최대 강점 중 하나인 '주식비중 조절'이 조정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의 대형 자문사들이 시장 움직임에 관계없이 주식비중을 90% 이상으로 가져가면서 주식형펀드와의 차별적 특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반펀드와 차별화 안돼
26일 A증권사의 내부 수집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자문사들은 코스피지수가 지난 4월 말 사상 최대를 기록한 후 조정을 거치는 동안 주식비중을 거의 바꾸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브레인투자자문은 4월 말 주식비중이 95% 수준(전체 계좌 평균)이었는데 5~6월에도 매주 평균 90%대를 유지했다. 한국창의투자자문은 이보다 높은 95% 수준을 계속 유지했다. '쏠림 투자' 탓에 조정장 수익률은 코스피지수보다 나빴다. B증권사가 판매한 브레인투자자문 자문형 랩은 지난 22일까지 3개월간 7.15%의 손실을 봤고,창의투자자문의 '액티브' 랩은 -8.96%의 수익률을 냈다. HR(-8.11) AK(-7.22%) 등도 성적이 좋지 않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와 주식형펀드(평균)는 -1.21%와 -4.32%의 수익률을 보였다.
반면 대형 자문사에 의존하지 않고 증권사가 주식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정한 일부 랩은 상대적으로 성과가 양호했다. 투자자가 맡긴 돈을 직접 운용하는 토러스증권의 '시크릿랩'은 22일까지 3개월 동안 0.19%의 수익을 냈다. 주식비중을 4월 셋째주 90%에서 6월 첫째주 63%까지 낮추는 등 민첩하게 대응한 덕분이다.
전문가들은 2009년 이후 대형 자문사 위주로 급성장한 자문형 랩이 조정장에 취약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10~15개 종목에 압축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이 상승장에선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조정 때는 매도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배준영 미래에셋증권 랩운용팀장은 "특정 종목 또는 업종 비중을 높게 구성한 대형 자문사는 주식 비중 조절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며 "주식을 내놓을 경우 시장의 투매를 자극하면서 수익률이 크게 나빠질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에 향후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투자자들의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 랩운용 담당자는 "고객들은 조정장에서도 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데,투자비중이 크다고 해서 또는 시장 눈치를 보느라 주식비중을 줄이지 못하는 자문사가 대부분"이라며 "매니저들이 과거 주식형펀드 운용에만 익숙해 주식비중 조절에 소극적인 것도 자문형 랩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배경 중 하나"라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들의 자문형 랩 잔액은 5월 말 현재 9조1824억원으로 1년 전(1조7997억원)의 5배로 성장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