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빅뱅'] (1) 자기자본 3조 넘어야 종합IB 가능…증권사 'M&A 폭풍' 예고

● (1) 자본시장 틀이 바뀐다

기업대출·프라임 브로커 등 신규업무 허용
대체거래소 도입…유통시장 경쟁 촉진

금융위원회가 26일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한국 자본시장의 '빅뱅'을 위한 전면적인 개편 방안을 담고 있다. 법 조문 10개 중 4개가 새롭게 추가되거나 개정될 정도로 상당 부분 바뀌었다.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지지부진했던 선진 자본시장으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자본시장 개정안은 시장과 산업의 발전을 위한 미래의 설계"라며 "자본시장에 관한 일대 개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업무 통한 대형화 유도

이번 개정은 대형 IB의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한국형 골드만삭스 출현을 목표로 2009년 2월 자본시장법이 시행에 들어갔으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IB 출현은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 3월 말 상위 5개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은 2조7000억원으로 2009년 3월 말(2조3000억원)보다 4000억원 불어나는 데 그쳤다. 여전히 미국 골드만삭스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정부는 이번에 대형 IB의 최저 자기자본을 3조원으로 정해 증권사의 대형화를 유도하기로 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대우 삼성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 등 5개사의 자기자본은 2조원을 넘는다. 이들은 많지 않은 증자만으로도 해당 요건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래에셋증권 신한금융투자 등 나머지 증권사는 IB가 되려면 1조원 이상 자기자본을 늘려야 한다. 홍영만 금융위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은 "법 시행 시점에 이를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향후 증권사 간 적극적인 M&A가 예고되는 대목이다.

이들 IB에는 종합적인 기업금융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신규 업무가 허용된다. 기업 대출 업무가 가능해져 M&A 자문이나 인수 과정에서 인수자금을 대주거나 신생기업에 자기자본투자에서 융자해 줄 수 있다. 헤지펀드 관련 지원서비스인 프라임브로커 업무도 가능해진다.

다만 연내 시행령 개정을 통해 헤지펀드가 바로 도입되는 만큼 프라임브로커의 자기자본 요건 충족에는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또한 비상장 주식에 대해 거래소시장을 통하지 않고 IB 내부적으로 주문을 집행할 수 있다. 장건상 금융투자협회 부회장은 "업무 범위가 크게 확대돼 글로벌 IB와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거래소 경쟁 체제 전환

정부는 대체거래소(ATS) 제도를 도입하고 거래소를 허가제로 전환키로 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120여개의 ATS가 운영되고 있다. 시행령에서는 ATS의 최소 자기자본을 500억원 수준으로 정할 예정이다. 1인당 ATS 주식보유한도는 15%로 하지만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승인을 얻어 30%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골드만삭스 등 증권사들이 ATS 설립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박종길 한국거래소 부이사장은 "국내 주식시장 규모를 반영할 때 ATS가 초기에 난립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TS 거래대상은 초기에는 상장주식만으로 시작해 향후 시행령 개정을 통해 채권 등으로 넓혀갈 예정이다. ATS 도입은 투자자가 시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TS의 청산업무 및 시장감시업무는 거래소가 담당하는 쪽으로 방침이 정해지고 있다. 거래소가 ATS를 완전 자회사 형태로 보유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해 유통시장 경쟁촉진과는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용어 설명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주식,채권 등의 증권 발행,인수,중개,기업금융과 인수 · 합병(M&A) 자문 등 기업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회사를 말한다. 돈을 빌려주고,예금을 받는 상업은행과 달리 위험을 평가,인수,중개,헤지,상품화하는 위험관리 전문 금융기관이다. 국내 증권회사는 위탁매매,중개 영업에 치중하면서 기업공개(IPO)나 M&A 중개 등 전통적인 IB 업무에 진입한 단계였다.


프라임 브로커

prime broker.헤지펀드 등 전문투자자가 요구하는 모든 서비스를 한 번에 제공하는 헤지펀드의 주거래 증권사다. 헤지펀드 설립부터 자금대출,주식대여,증거금 대납 · 대출,자산보관,결제,투자자 소개는 물론 법률자문과 사무소 소개,임대 지원 등 업무 영역이 넓다. 헤지펀드는 차입(레버리지) 확대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프라임 브로커와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체거래소(ATS)

시장 규제와 상장 기능을 제외하고 주식거래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 세계적으로 12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ATS 주식거래 비중이 42%,유럽연합(EU)은 30%,아시아는 1.1% 수준이다. ATS 도입시 한국거래소의 증권거래 독점 체제가 사라져 주식 거래비용이 내려가고 유통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섀도 보팅

shadow voting.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다. 경영진과 대주주의 정족수 확보수단으로 남용돼 주주총회 형식화를 유발한다는 지적과 함께 폐지 여론이 일었다. 2002년 1월 옛 증권거래법 개정 추진 당시 폐지 시도가 있었지만 대안이 없어 무산됐다.


조건부자본증권증권 발행 시점에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미리 정하는 사유가 발생할 경우 주식으로 전환된다는 조건이 붙은 회사채를 말한다. 조건부자본증권에는 역(逆)전환사채,의무전환사채(강제전환사채) 등이 있다. 일반 전환사채(CB)의 경우 전환권이 채권자에게 있지만 역전환사채는 채권자가 아닌 사유 발생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