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車수출 4만대 늘어나는데 '굴욕 협상'이라니"

● 한·미FTA 협상 주역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前 정권 땐 격려하던 정치인…반대 입장 전환에 '정치무상'
美 9월로 비준처리 미뤘지만 절차상 속도 우리보다 빨라
對美 수출 연간 490억弗 규모…中企 부품·제품 50% 달할 듯

"지금보다 미국으로 4만여대의 자동차를 더 수출할 수 있는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굴욕 협상'이라고 한다면 '굴욕'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

한국과 미국 의회에서 FTA 비준을 앞두고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60)은 "한 · 미 FTA가 양국 간 이익균형을 맞추지 못한 불균형 협상이란 야당의 주장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작년 추가 협상으로 자동차 부문의 수출이 다소 줄었지만 양국 간 FTA가 발효되면 자동차 수출로만 여전히 5억달러에 달하는 추가 무역흑자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미 의회가 9월 회기에 비준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며 "비준안 처리 절차상 양국 간 속도 차이가 있는 만큼 내년 1월 협정 발효를 위해선 한국 국회가 좀 더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 미 FTA를 반대하는 야당에 대한 섭섭함도 솔직히 드러냈다. 김 본부장은 "전 정권에서 격려해주던 정치인들이 반대 입장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면 '정치 무상'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 미 FTA가 왜 필요하다고 봅니까.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에 비해 많이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세계 거대 경제권입니다. 미국 수입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3.7%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2000년대 이후 3% 밑으로 떨어진 뒤 작년 2.6%를 기록하는 등 10년 가까이 3%대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에 밀리는 넛크래커 현상이 고착화하는 양상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EU) 같은 선진 경제권에서 경쟁국에 시장을 내준다면 개도국이나 틈새시장에서도 설 자리를 점차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FTA로 거대 경제권과의 교역조건을 좋게 만들어 경쟁국보다 시장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한 · 미 FTA는 양국 간 경제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매개체가 될 겁니다. "

▼미 의회의 8월 비준 처리는 물건너간 것 같습니다.

"당초 예상했던 여름 휴회 전(8월6일) 처리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부채 한도를 늘리는 협상을 타결했고,한 · 미 FTA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미 행정부와 의회가 모두 공감하고 있어 9월 회기에 처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서두를 필요가 있습니까.

"미 의회의 한 · 미 FTA 비준 처리는 사실상 절반 이상 진행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미 행정부가 관련 법률 개정안까지 모두 담고 있는 FTA 이행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만 하면 90일 이내에 내용 수정 없이 상 · 하원 표결로 처리가 결정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고 나면 그때부터 심사를 시작하고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며 기한 없이 처리가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 의회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선 8월 임시국회에서 최소한 상임위원회 통과라도 해야 합니다. "

▼야당은 재(再)재협상을 요구하는데."민주당이 최근 제시한 '10+2' 반대안을 조목조목 다 살펴봤습니다. 수용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용 자체가 수긍할 만한 게 없습니다. 예컨대 금융세이프가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산을 몰수하자는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나라 대문을 닫자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런 내용을 갖고 재협상하라는 것은 한 · 미 FTA를 폐기하자는 얘기입니다. "

▼민주당 지도부는 추가 협상을 '굴욕 협상'이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협상을 주도한 책임자 입장에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자동차 분야 추가 협상으로 양국 간 이익 균형이 파괴됐다는 주장은 지나칩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분야의 추가 협상으로 대(對)미 자동차 수출 증가분은 6억1400만달러에서 5억5900만달러로 5500만달러 감소할 전망입니다. 원래 협정과 비교해 쏘나타급 승용차 4200여대분의 수출이 줄어든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만큼의 수출이 감소해도 여전히 4만3000여대의 자동차 수출이 한 · 미 FTA로 순증합니다. "

▼지금 야당이 집권당일 때 한 · 미 FTA 정부 간 협상을 타결한 것 아닙니까.

"정치무상입니다. 현재 한 · 미 FTA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의 상당수는 전 정부 때 저에게 협상 잘했다고 성원해줬던 분들입니다. 정치라는 게 계속 돌고 바뀌는 것인데 다시 집권하게 되면 어떻게 얘기할지 모르겠습니다. 경제적인 논리로는 정치인들의 반대가 이해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소한의 논리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게 아쉽습니다. "

▼한 · 미 FTA가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체 대미 수출액 중 대기업이 얼마,중소기업이 얼마 이렇게 구분해 통계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지난해 미국으로 수출한 490억달러 중 30% 정도가 중소기업 몫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대기업 수출품에 들어가는 중소기업 부품까지 감안하면 전체 대미 수출의 50% 안팎이 중소기업 제품일 것으로 추산됩니다. "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