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 몰리는 美은행 "돈 맡기려면 돈 내"

뉴욕멜론銀, 예치 수수료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현금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돈이 은행에 몰려들자 미국의 뉴욕멜론은행이 예치금에 대해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 은행의 고객은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현금 보관료를 지불하는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뉴욕멜론은행이 다음주부터 5000만달러 이상 예금을 맡긴 고객들에게 연 0.13%의 수수료를 물린다고 5일 보도했다. 뉴욕멜론은행은 기관투자가나 기업의 자산을 운용하고 관리해주는 수탁은행이다. FT는 예금에 수수료를 물리는 은행이 나왔다는 것은 미국에서 안전자산이 최고란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증시 부동산 등에서 빠져나온 기관투자가나 기업의 자금이 이자율은 낮지만 원금 손실 위험이 작은 수탁은행 예금이나 단기 채권에 몰리고 있다는 것.

FT에 따르면 1개월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4일 -0.0102%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뉴욕 증시가 금융위기 이후 이날 가장 큰 폭으로 주저앉은 상황에서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자금이 채권시장으로 몰리면서 초단기물 공급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멜론은행은 초단기 미 국채 수익률이 더 떨어질 경우 수수료율을 추가로 높일 예정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사실상 제로(0)인 상황에서 예금이 몰리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은행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고객들의 돈을 운용해 수익을 내는 것인데 현재 상황에서는 돈을 굴릴 곳을 찾기도 어렵다.

또한 쏟아져 들어오는 고객의 돈을 다 받았다가 건전성에 위험이 생길 수도 있다. 은행에 들어왔던 자금이 시장 상황이 개선돼 한꺼번에 빠져나가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경우도 생각해야 한다. FT는 다른 은행들도 시장 상황을 주시하며 이 흐름에 동참할지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폰드 바클레이즈캐피털 이자율 전략가는 "벌써부터 미래 경제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해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정부의 경제정책이나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