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O 사업 오해와 진실] (1) 대기업 "소모품 비용 되레 늘 것"…中企 "대형화는 구매자 힘만 키워"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1) 삼성·SK 잇단 철수…MRO 사업 어디로
● 대기업

왜 철수하나
원가절감 이득 크지만 '동반성장' 여론에 물러서中企 사업기회 박탈?
경쟁 입찰로 편법 없애 中企제품 판로 역할도

'富의 대물림'?
IMK 오너일가 지분 '제로'…대주주 배당금 거의 없어

삼성,한화에 이어 SK그룹이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에서 사실상 손을 떼기로 했다. 2000년 첫선을 보인 국내 MRO사업이 10년 만에 명맥이 끊길 처지에 놓인 셈이다. MRO는 해외에서 1920년대부터 보편화된 사업이다. GM MS 애플 등 대다수 해외 기업이 MRO를 통해 자재를 공급받는다. 유독 국내에서만 MRO사업이 문제되는 이유는 뭘까. 또 대기업이 MRO사업을 포기하면서 중소기업이 얻게 될 실익은 무엇일까. ◆중소기업 사업 기회 박탈해왔나?

국내에 MRO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00년.삼성(아이마켓코리아),SK(MRO코리아),포스코(엔투비),코오롱(코리아이플랫폼)이 MRO 계열사를 차렸다. LG도 2002년 서브원을 만들었다. 대기업이 MRO를 만든 것은 핵심 업무를 제외한 소모성 자재 구매 등 비핵심 업무를 외주로 돌리는 게 원가 절감면에서 이득이라는 판단에서다. 당시 정부도 온라인 기반 MRO를 통해 구매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적극 지원했다.

10년 전엔 MRO가 '선진 경영기법'이었다. 그러나 대 · 중소기업 동반성장 바람 속에서 대기업 MRO는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한다는 비판의 중심에 서 있다. 대기업이 사소한 물품까지 MRO 계열사를 통해 구입하다 보니 MRO와 연을 맺지 못한 영세 업체는 살 길이 없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이런 지적은 타당한 측면도 없지 않다. 아이마켓코리아(IMK) 매출 중 삼성 계열사 물량은 80%,서브원 매출 중 LG 계열사 물량은 70%에 달한다. 취급 품목도 부품 공구 볼펜 등 최대 100만여개에 이른다.

대기업 MRO들은 구매 효율성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이 뚫기 힘든 대기업에 납품하는 등 판로 개척에 도움을 줬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아이마켓코리아는 1만1000개,서브원은 1만개,MRO코리아는 2700개 중소기업에서 물품을 구매해 대기업에 공급한다.

◆부(富)의 대물림 통로인가?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지난달 17일 "(대기업 MRO는) 합법을 가장한 지하경제"라고 했다. 주요 그룹들이 MRO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식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변칙 부당거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이런 견해는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대기업 MRO 가운데 유일한 상장기업인 아이마켓코리아의 지분 58.7%는 삼성전자 · 삼성물산 등 9개 계열사가 나눠 갖고 있다. 나머지 41.3%는 소액주주 보유분과 우리사주다.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사장 등 대주주 일가 지분은 하나도 없다. 부의 대물림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LG그룹 MRO 계열사인 서브원은 그룹 지주사인 ㈜LG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때문에 서브원이 배당을 하면 ㈜LG 지분이 많은 대주주 일가가 이득을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LG 측은 "서브원의 배당금은 ㈜LG 수익으로 잡히는 것이며 ㈜LG 출자자산 중 서브원 비중은 1.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SK와 포스코,코오롱은 MRO 계열사로부터 한 번도 배당을 받은 적이 없다.

◆사업 철수 과정에서 후유증은?

대기업의 MRO사업 철수로 관심은 중소기업이 누릴 효과에 쏠린다. MRO 취급 물량이 가장 많은 삼성이 사업을 포기한 가운데 LG와 웅진,포스코 등은 앞으로 MRO를 통해 계열사 물량만 취급하겠다는 입장이다.

MRO를 이용하지 않을 경우 구매비용이 크게 늘 것을 우려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B사 관계자는 "중소기업과 직접 거래하려면 100만개 물품을 구입하는 데 적어도 1000명 이상의 구매인력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 계열 MRO가 없어진 자리를 외국계 기업이 잠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일각에선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물품을 공급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중간 유통상이 등장하게 될 텐데,그에 따른 중간마진이 발생해 결국 중소기업에 득이 될 게 하나도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태명/조재희/김동욱 기자 chihiro@hankyung.com



● 중소기업

유통기반 파괴가 문제
공공기관 · 정부부처까지 확대…공구분야로도 무차별 확장

소모품 생산업체 '착잡'
대형MRO서 수출창구 역할…원가 절감 사례도 적지 않아

중소 유통업체 셈법 '복잡'
中企영역 보호는 긍정적…IMK 등 해외매각 반대

대기업의 잇단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축소 · 매각 움직임을 보는 중소기업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이들 MRO에 납품하던 소모품 생산 업체들은 착잡하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낮은 수수료 때문에 갈등을 벌여왔지만 사실 외형 확대와 수출시장 개척에 상당한 도움을 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기업 MRO에 반대해왔던 중소 유통업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아이마켓코리아의 해외 매각 가능성과 중소기업중앙회,중소기업진흥공단 MRO 진출 가능성 등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유통업체들의 영역을 침범하기는 해외 기업이나 중소기업단체나 마찬가지'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저가 수수료로 소모품 유통 기반 파괴"

중소기업들은 그동안 "대기업이 계열사 소모품 공동구매를 통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협력업체 등 외부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건 납득하기 힘들다"고 반발해왔다. 여기에 공공기관,정부부처 등에 납품하자 "국내 중소 유통업체를 모두 죽이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특히 몇몇 대기업들은 소모성 자재와는 관련성이 적은 공구 분야에까지 손을 뻗으면서 국내 공구 유통업체들의 공적이 되기도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단체들은 "일부 MRO에 오너 집안이 상당 부분 출자한 점을 보면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부의 대물림'이라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대형 MRO는 누가 하든 다 문제"

중소유통업체들은 대기업 MRO 사업영역 축소 움직임에 대해서는 "대기업이 사무용 소모품 유통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늦었지만 중소기업의 영역이 보호돼야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마켓코리아 매각과 중소기업진흥공단의 MRO 진출 추진에 대해서는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아이마켓코리아가 자칫 외국 업체에 넘어갈 경우 중소유통업체에는 최악의 상황이 될 수 있다. 산업용재 공구상협회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의 경우 협상의 여지라도 있지만 해외 업체들의 경우 통상문제로 번질 수 있다"며 "또 해외 저가 소모품을 가져다 쓰게 되면 국내 중소생산업체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유통업체들은 중소기업중앙회의 아이마켓코리아 인수 검토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가 중소유통업체들과 경쟁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논리다.

또 중소기업진흥공단 산하 중소기업유통센터가 최근 MRO 시스템을 갖추고 공공조달시장 참여 움직임을 보이는 데 대해서도 문구유통업조합 등은 "공공기관이 MRO를 만들어 중소유통업체들과 밥그릇 싸움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결국 대기업 MRO뿐만 아니라 대형 MRO의 운영주체는 어디든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생산업체 "MRO와 거래,득도 많았다"

소모품 생산(납품)업체 중에서는 대기업 MRO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보내는 곳도 적지 않다. 확실한 납품처를 확보하다 보니 안정적으로 경영을 이어갈 수 있었고,MRO와의 거래를 통해 수출 성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밀장비부품을 아이마켓코리아에 납품하는 에스티에스의 박성수 과장은 "아이마켓코리아가 수출 창구가 되면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0% 이상 신장됐다"고 말했다.

필름제조업체인 T사도 아이마켓코리아를 통해 수출을 성사시킨 사례다. T사 관계자는 "판매망을 확보하지 못해 고전하다가 2005년 MRO를 이용해 국내는 물론 일본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MRO와의 기술협의와 공동개발 등을 통해 원가를 낮추거나 기술력을 높인 사례도 많다. 아이마켓코리아와 공동으로 에어로젤 사출성형기 커버를 개발한 에어로젤어플리케이션이 대표적이다.


◆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aintenance(유지),repair(보수),operation(운영)의 영문 약자다. 우리말로는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이라고 한다. 기업이 제품 생산을 하는 데 필요한 원 · 부자재 이외의 소모성 자재를 아웃소싱을 통해 공급받는 사업을 말한다. MRO 품목은 기계부품,사무기기,공구 등을 비롯해 청소도구 볼펜 복사지 손장갑 등 수백만개에 달한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