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우산이 주는 교훈

우산의 사전적 의미는 '펴고 접을 수 있어 비가 올 때 손에 들고 머리 위를 가리는' 물건이다. 지금이야 흔한 게 우산이다. 하지만 서양 문물이 들어오기 전인 불과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우산은 왕과 최상위 관직자에게만 허용된 고급 물품이었다. TV드라마의 사극에서 궁녀들이 힘겹게 들고 있는 이런 우산은 우산보다는 양산에 가깝고 신분과 계급을 표시하는 의례용품의 성격이 강했다.

현대적인 의미의 우산이 나타난 것은 19세기 후반께다. 일본과 미국의 외교사절,또는 신사유람단 등 유학생을 통해 수입됐다. 그렇다면 그 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우산 없이 어떻게 비를 피했을까? 일반 백성들은 보통 갈대로 만든 삿갓과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썼다.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방수력을 자랑한 갈대 삿갓과 도롱이는 20세기 중반까지도 농촌에서 널리 이용됐다. 산업이 발달하고 소득이 늘어나던 1980년대까지도 우산은 귀한 소비품이었다. 매끈하고 튼튼한 우산이 부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다. 우산이 본격적으로 '흔한' 물건이 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특히 결혼식 피로연 대신 답례품을 주는 풍습이 생기면서 우산은 갑자기,대량으로 '흔한' 물건이 됐다. 비오는 아침마다 우산 쟁탈전을 벌여야 했던 아이들에겐 큰 축복이었다.

2011년 여름,우산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 것은 잦은 폭우로 우산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돈을 더 주고라도 튼튼한 우산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매일 아침마다 우산을 챙겨본 적도 없었고,우산을 쓰고도 이렇게 자주 옷이 흠뻑 젖어본 적도 없었다.

여름 내내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하는 우산이지만 비가 그치면 바로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진다. 다시 비가 오기 전까지 어둡고 구석진 곳,가급적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다시 손길이 오길 기다린다. 살에 녹이 슬어도,천이 구겨지고 곰팡이가 피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다. 하지만 신발장 구석에 박힌 우산은 비록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만든 명품은 아닐지라도 폭우로부터 우리 몸을 지켜준 최전선의 안전장치고 보호구다. 비가 오지 않을 때 우산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존재지만 비가 올 때 우산이 없으면 옷이 다 젖는다. 경제적으로 여유 없는 삶 속에서 노후 준비는 비가 오지 않을 때 우산과 같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령화사회에서 이제 노후 준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폭우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와 미국발 금융위기로 내우외환의 몸살을 앓는 지금 나와 가족을 지켜줄 우산은 튼튼한지,내 금융자산은 안전하게 배분돼 있는지,만일에 대비한 보장은 충분한지 다시 한번 확인할 시점이다. 우산은 비오는 날 아침 부랴부랴 준비하는 게 아니라 화창하고 밝은 날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하만덕 < 미래에셋생명 사장 mdha426@miraeass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