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풋'과 '버냉키 콜'로 본 증시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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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 풋’과 ‘버냉키 콜’로 본 향후 글로벌 증시 전망]
어떤 국가이든 간에 중앙은행 총재가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특히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장은 그렇다.
미국 역사상 시장참여자들의 신뢰가 가장 높았던 FRB 의장은 앨런 그린스펀이다. 많은 사건 가운데 이런 신뢰관계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것은 1998년에 발생했던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 사태다. 당시 러시아 모라토리움(국가부도) 사태로 LTCM이 파산 직전에 몰리자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이때 세 번에 걸친 금리인하를 통한 긴급조치 덕분에 LTCM의 사태가 극적으로 해결됐고 시장참여자들은 외부충격을 흡수하는 그린스펀의 능력을 맹신하게 됐다. 위험을 상쇄시키는 이런 능력 때문에 증시의 침체로부터 옵션 보유자를 보호하는 풋 옵션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그린스펀 풋(Greenspan put)'이란 용어까지 탄생했다.
1990년대 후반처럼 신(新)경제로 대변되는 증시기초여건이 견실한 상황에서 그린스펀 풋까지 가세됨에 따라 저가 매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당시의 시장참여자들은 좋은 주식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할 수 있는 기회가 도처에 깔려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국경제는 신경제 국면이 연출됐고 주가는 크게 상승했다.
그린스펀에 뒤이은 버냉키 의장은 취임 초 인플레이션에 대한 언급수위에 따라 세계증시가 요동을 친 적이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금리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 ‘버냉키 충격(Bernanki shock)’라 불리울 정도로 주가가 급락했고, 반대로 인플레이션이 통제 가능해 금리인상 우려가 줄어들면 ‘버냉키 효과(Bernanki effect)‘라 표현될 정도로 주가가 급등했다.
문제는 불과 하루 이틀 간격으로 이런 현상이 교차됨에 따라 증시참여자들이 버냉키 의장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갈수록 비우호적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증시참여자들이 느끼는 피로도가 얼마나 되는가를 알 수 있는 금융스트레스 지수(financial stress index)를 구해 보면 버냉키 의장이 취임한 1년간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시장참여자들의 신뢰는 떨어졌다. 당시 이런 상황을 두고 월가에서는 그린스펀 풋과 대비시켜 '버냉키 콜(Bernanki call)'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최근에는 3차 양적완화 추진에 대한 언급을 하루아침에 번복함에 따라 버냉키 의장에 대한 신뢰가 재추락하면서 이 용어가 오랜만에 다시 등장했다.
버냉키 콜이란 잦은 말바꿈으로 시장참여자들이 느끼는 피로가 누적되면 옵션 보유자를 보호하지 못해 만기 이전이라도 권리행사를 촉진시키는 콜 옵션과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앞으로 버냉키 콜이 발생하면 앞으로 경기나 기업실적과 같은 기초여건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보유주식이 출회돼 증시는 지금의 조정국면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요즘 정책당국자일수록 어렵다고 한다. 남아 있는 위기과제와 위기 후 찾아올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케인즈언과 포스트 케인즈언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기는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월가에서는 ‘마라도나 효과’가 절실하다고 한다. 펠레와 함께 월드컵 영웅인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래 예측해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정작 골을 넣기가 쉬었다는데서 비롯된 용어다. 현 상황에 적용하면 정책당국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시장과 정책수용층이 알아서 행동하면 당면한 현안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마라도나 효과는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이 또한 월가에서는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확산되고 있는 ‘버핏 신드롬’과 ‘소로스 퇴조론’을 따져보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부자가 되려는 모든 사람들은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를 꿈꾼다. 그만큼 금융권에서 이 두 사람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다르다. 버핏은 ‘오마현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나 거부반응이 없다. 마치 이웃 아저씨와 같은 인상을 풍긴다. 반면 소로스는 ‘냉혈 인간’이라는 표현이 말해 주듯 모든 사람들이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비쳐진다.
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왜 이렇게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부터 다르다. 버핏은 부모로부터 돈에 관한 모든 것을 어릴 적부터 배웠다. 소위 몸에 밴 체화된 부자다. 하지만 소로스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에 유럽지역을 커다란 혼란에 빠트렸던 통화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로부터다.
부자들이 추구하는 돈에 대한 관념도 다르다. 버핏은 부모 세대로부터 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하나의 도구로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해 돈을 벌거나 쓰는데 있어서 여유가 있다는 의미다. 반면 소로스는 돈이 주는 다양한 이점보다 돈 그 자체만을 버는데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비쳐져 왔다.
돈에 대한 개념은 일상생활이나 투자방법, 부자가 된 이후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영향을 미친다. 우선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버핏은 고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오래된 뿔테 안경과 20년 이상된 켐리 자동차, 오마현의 작은 집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검소하다는 그 말 자체다.
워런 버핏 만큼은 되지 못하지만 소로스도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검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상생활에서 검소한 것은 이들 두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슈퍼 리치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은 워런 버핏과 다른 점이다.
두 사람 간에 돈을 버는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크다. 돈에 대해 여유가 있는 버핏은 돈을 버는데 조급해 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비정상적이고 이기적인 방법을 가능한 피한다. 이 때문에 단기적인 투기가 아니라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가 가능해 진다. 그 때 그 때 시장흐름보다 큰 추세를 중시하기 때문에 투자에 피로도 적다.
이 점에 있어 소로스는 상당히 다르다. 장기투자보다 초단기 투기를 더 선호한다. 소로스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1990년대의 경우 하루에도 몇 차례씩 각국의 통화와 주식을 사고 판 적이 많다. 특히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환과 같은 시장일수록 이런 투기행위를 즐긴다.
투기행위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시장에 순응하기 보다는 시장을 교란시켜야 한다. 소로스는 자산이 운용하는 타이거 펀드 등의 시장주도력을 십분 활용해 1990년대 초 유럽통화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통화를 실제 여건보다 흔들어 놓으면서 위기로 몰아넣었다. 최근에는 유럽 재정위기로 약세가 예상되는 유로화에 투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자가 된 이후에도 이 두 사람이 걷는 길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버핏은 평생 동안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해 ’박애주의자‘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또 자녀들에 대한 상속도 인색하다. 너무 많은 상속은 자녀들의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망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점에 있어 소로스는 아직까지 베일에 숨겨져 있다.
이 모든 것이 같은 부자라 하더라도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버핏은 ‘신드롬’이란 용어가 나올 만큼 영향력이 더 커졌다. 이제 그의 말 한마디와 행선지, 보유종목 등은 세계인의 관심을 끈다. 반면 소로스는 ‘퇴조론’이 일어나면서 자신이 운용하는 펀드까지 해체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남을 배려해 신뢰가 쌓이면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현안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버핏 신드롬’과 ‘마라도나 효과’의 실체다. 2차 대전 이후 안전판 역할을 해왔던 미국의 ‘트리플 A’라는 상징이 깨지면서 글로벌 증시가 신뢰위기에 봉착해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변동성 장세인 ’팻 테일 리스크‘까지 발생하는 요즘 월가에서 이 ’신드롬‘과 ’효과‘를 갈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린스펀 풋과 버냉키 콜도 시장참여자들의 신뢰여부에 따라 중앙은행 총재의 운명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증시를 비롯한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본연의 책임을 다할 경우 그린스펀처럼 시장참여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FRB 역사상 최장수 의장을 맡을 수 있도록 밀어주고(put), 그렇지 못할 경우 시장참여자들의 부름(call)으로 중앙은행 총재직을 임기 이전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월가에서 버냉키 의장 못지않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누니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버핏 회장은 연일 미국경제와 국가신용등급에 강한 신뢰를 보내면서 주식을 살 것을 권한다. 반대로 루비니 교수는 미국경제 앞날에 강한 회의론을 제기하면서 지금은 주식을 팔아 현금을 보유할 때라고 주장한다.
최근처럼 신뢰위기 국면에 자주 인용되는 ‘그린스펀 풋’과 ‘버냉키 콜’을 두 사람의 시각에 적용해 보자. 증시 앞날과 관련해 월가의 시장참여자들이 ‘버핏 풋’과 ‘루비니 콜’을 보낸다면 주가는 상승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버핏 콜’과 ‘루비니 풋’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주가는 크게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렸다. 버핏 회장은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월가는 여전히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지만, 루비니 교수는 거듭된 비관론이 들어맞지 않아 신뢰가 예전만 못하다. ‘버핏 풋’과 ‘루비니 콜’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증시 앞날에 대해 너무 비관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때다.
인터넷뉴스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