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을 파는 '문화상품'…불황 속 쑥쑥 크는 커피시장

SERI.org 경영노트 - 김근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작년 커피 수입량 '사상 최대'
퇴직자, 커피전문점 창업 몰려
금보다 빨리 오르는 원두값
신흥국 소비 증가…투기자금 유입
주위를 둘러보면 커피전문점이 부쩍 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국내 커피시장의 성장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커피 수입량은 11만7000t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인당 소비량으로 환산하면 성인 한 사람이 연간 312잔,1주일에 6잔씩 커피를 마시는 셈이다. 어느덧 커피가 한국인의 일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 서부의 카파(Kaffa)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는 8~9세기부터 커피를 재배했다. 이후 커피는 아라비아반도와 터키를 거쳐 17세기께 유럽에 전파됐다. 17~18세기 유럽에서 커피는 계몽주의 사상과 더불어 '이성의 시대'를 상징하는 음료로 지식인 계층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의 커피전문점과 비슷한 당시 유럽의 커피하우스는 과학자 상인 자본가 등이 한 자리에 모이는 토론장이자 비즈니스 무대였다. 근대 이후 세계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음료가 된 커피가 큰 시장을 형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 가격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화제가 되고 있지만,최근 커피 원두 가격은 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지난 4월에는 원두 가격이 파운드당 3달러를 돌파,3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과거에는 원두 생산지의 자연재해로 가격이 오르는 일이 많았지만,요즘에는 신흥국의 소비 증가가 원두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예상한 투기자금까지 유입되면서 원두 가격은 더욱 빠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세계 1위 원두 생산국이면서도 정작 커피를 많이 마시지는 않던 브라질에서 커피 소비가 늘었고,전통 차를 마시던 중국과 인도에서도 커피 소비가 급증세다.

국내 커피시장은 연간 2조7000억원 규모다. 커피믹스가 1조2000억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커피전문점 시장은 8300억원 규모로 아직 커피믹스에 못 미치지만 성장 속도는 빠르다. 흥미로운 점은 전반적인 소비 부진 속에서도 커피전문점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황기 소비자들에게 작은 만족을 주는 '자기위안형 소비재'라는 점이 커피 소비를 촉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진입장벽이 낮아 퇴직자들의 창업 수요가 커피전문점에 몰린 것도 커피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이다. 커피시장의 성장에는 한국 사회 소비문화의 변화상도 담겨 있다. 예전에 커피는 단순히 '각성효과를 지닌 음료'로 인식됐다. 하지만 커피전문점이 확산되면서 커피는 '감성적 · 실용적 체험의 매개체'가 됐다. 스타벅스 등이 국내에 처음 들어왔을 때 일부에서 허영심과 과시욕을 부추긴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커피전문점이 보편화되면서 점차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커피를 소비하게 됐다. 커피전문점에서 회사 업무를 하는 직장인을 일컫는 '코피스족',커피를 마시면서 자녀교육에 관한 정보를 주고받는 학부모를 뜻하는 '카페맘',카페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의미하는 '카페브러리족' 등 다양한 신조어도 생겨났다.

커피의 역사는 단순한 음료에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로,감성적 체험을 제공하는 문화상품으로 끊임없이 변신해 온 혁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가볍게 마시는 커피 한 잔에서 시대 변화에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lune.kim@sam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