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통부를 부활하자고?

정통부는 참담한 '정부의 실패'…혁신 위해 과거 패러다임 벗어야
민주당이 정보통신부 부활론을 들고 나왔다. "세계는 스마트폰,아이패드 등 모바일 혁명을 하고 있는데 정통부를 없앴기 때문에 역행 침식이 일어났다"는 게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진단이다. 아무리 정치인이라고 해도,또 총선과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지만 사실관계까지 왜곡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밖에서 모바일 혁명이 꿈틀댈 때 한국에는 정통부가 존재하고 있었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참여정부 시절이다. 당시 정통부는 문을 걸어 잠근 채 정보기술(IT)강국이라고 용비어천가를 소리높여 불러댔다. 한국형 표준이 등장했고,이런저런 규제도 생겨났다. 그러나 세계시장으로부터 고립됐을 때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참담한 정부 실패였다. 이게 진실이다. 그나마 정부 실패로부터 벗어난 건 개방과 경쟁 덕분이었다. 정부 실패를 시장이 바로잡았다. 지난 10년,아니 20년 동안 정부가 하지 못했던 많은 변화를 시장이 몰고 왔다.

부처가 없어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면 이 세상에 발전 못할 나라가 없다. 그런 논리면 미국의 IT 주도는 그야말로 미스테리가 되고 만다. 핵심은 정통부 폐지에 있는 게 아니다. 아직도 정통부 프레임에 갇혀있는 정부 자체에 있다. 세상이 달라지면 정부도 변해야 하는데 이 정부는 마땅히 해야 할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규제개혁,연구개발,인력양성이 다 그렇다.

사회제도를 연구해 왔던 경제학자들은 기술과 제도의 공동진화(co-evolution)가 있어야 혁신이 일어난다고 결론 내렸다. 제도가 동맥경화증에 걸리면 기술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규제개혁에 나서야 할 방통위는 동맥경화증 환자 같다. 방송에 묻혀 통신이 실종된 것도 그렇고,모바일 혁명을 떠들다가 곧바로 갈라파고스 섬으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다. 언제 정통부가 부활되어 다시 돈 나눠주는 재미를 맛볼지 그것만 궁리하는 것 같다. 주파수 경매제도 그래서 미심쩍다. 지식경제부가 삼성 LG 등과 국산 운영체제(OS) 개발에 나서겠다는 것도 전형적인 정통부 발상이다. 정부가 뛰어들어 뭘 어쩌겠다는 얘기인지.일본이나 정통부의 실패사례를 적시할 필요도 없다. 정부는 3년 후를 보고 OS 개발을 하겠다지만 그 정도는 기업들이 알아서 한다. 삼성 LG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공동 연구를 못할 수준인 것도 아니다. 구글-모토로라 합병이 경쟁법에 저촉되는지 보겠다는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의 말은 허공에 대고 큰 소리를 한번 질러보는 효과라도 있다. 하지만 지경부의 대응은 그런 것도 아니다. 실익도 없이 통상 마찰의 빌미만 제공하고 말 것이다.

소트프웨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20년 전부터 나왔지만 대학 소프트웨어 교육은 붕괴되고 말았다. 대기업,중소기업 모두 소프트웨어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일자리도 없는 분야에 대학생이 많이 배출되도록 방치하고,정작 필요한 곳에 인력이 부족해진 것은 구 정통부의 직무유기에 교과부의 무책임이 더해진 결과다. 대학개혁의 나팔소리만 요란할 뿐 대학과 시장의 단절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통부가 부활하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정부 실패를 또 하겠다는 시대역행적 발상이다. 오히려 정통부 폐지로는 부족해 보인다. 내친 김에 방통위,지경부,교과부도 다 없애 버리면 어떤가.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면 그게 훨씬 빠른 길일지 모르겠다. 국민 세금도 아끼고.

안현실 논설위원 /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